혼란스런 정치에도 운이 따르는 나라
혼란스런 정치에도 운이 따르는 나라
  • 채수찬 경제학자
  • 승인 2020.08.09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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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잘못해도 나라가 잘되면 된다. 정책이 엉터리라도 그 결과가 좋으면 된다. 하지만 잘못한 정치가 어떻게 나라를 잘되게 할 수 있고, 엉터리 정책이 어떻게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반문할 것이다. 세상이 뒤집히고 요동칠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축구 경기로 비유하자면 골대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공을 찼는데 공이 상대편 선수의 몸에 맞아 골대로 들어가기도 한다.

 여당은 경제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거에 이기려는 일념으로 선심성 돈 풀기를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그동안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설정했던 준칙들을 깨뜨렸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경제가 급락하자 이는 독이 아니고 득이 되었다. 경기대응을 위한 재정정책은 원래 시간을 두고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뒷북을 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들이 지금 한발씩 늦은 위기대응으로 헤매고 있다. 한국은 미리 확장적 재정정책을 치고 나간 것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나라의 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 집권세력은 강남 세금폭탄과 부자증세를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이념적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재산 많고 소득 높은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 무리할 정도로 급격하게 세금을 올렸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통상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수준의 돈 풀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재정파탄과 지나친 인플레를 막기 위해서 증세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산 많고 소득 높은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하는 게 합리적인 방안이다. 현 정부가 부자들에게 급격하게 세금을 올린 게 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래저래 한국은 운이 있는 나라다. 덩달아 현 집권세력도 운이 있다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선거 때마다 예상하지 못한 호재가 터져서 압승해왔다. 그러나 끝까지 좋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혼란스런 정치와 정책을 계속할 것으로 보이는데, 항상 하늘로부터 운이 따라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책임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현 집권세력에게 끝까지 좋은 일만 있을 거로 생각하기 힘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적폐청산 작업을 통해 사회적 규범을 끌어 한껏 올렸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 수준에 맞추지 않으면 적폐로 몰리게 되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억지 부리는 것은 힘이 있을 동안에는 통하겠지만, 힘이 빠지면 통하지 않는다.

 현 집권세력이 제발 정신차려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기 쉽지 않은 것처럼 한 세력의 성향도 바뀌기 어렵다. 여기서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상황이 바뀌면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자기 세력의 정치적 이익을 넘어선 공동체 정신이 발휘되어야 한다. 외부의 적을 공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운 것은 필요에 따라 내부의 친구들을 제압하는 일이다. 필자가 이런저런 일로 도움을 드릴 기회가 있었던 지도자 중에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정신을 가졌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우리 세대가 경험하는 초유의 사태다.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이 감염병 위기가 오래갈 것이고 피해도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늑장 대응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국은 운이 따주었는지, 별나게 야단스런 집권세력 덕분인지, 아무튼 선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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