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곧게 살아온 죄
너무 곧게 살아온 죄
  • 이경재
  • 승인 2020.07.13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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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늦게 그의 실종 소식을 듣고 불길한 예감으로 잠을 못 이루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한밤 중엔 천둥번개가 치며 계속 비가 내렸다. 하늘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접하게 된 황망한 소식.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

 우리는 노무현, 노회찬에 이어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애써왔던 또 한 사람을 잃었다. 너무 곧게 살아왔기 때문에 조그마한 오점이라도 남기는 것은 스스로 견딜 수 없었으리라.

 더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왜 이런 비극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잘못한 죄에 대한 법적인 형벌’에 비해 ‘너무 곧게 살아온 죄에 대한 사회적 형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너무 곧게 살아온 것은 죄가 아니다. 잘못한 만큼만 벌 받고 다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가 되어야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별장에서 발가벗고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인간말종 짓을 한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 연예인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들은 또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듯이, 훨씬 더 큰 잘못을 저지른, 똥 묻은 개들만 세상을 활보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해 일반인과 똑같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도 안 된다. 그러나 같은 사회지도층 인사인데 더 곧고 훌륭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옳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는 사회를 만들 뿐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삶이 참작사유가 되어 더 많이 용납하고 또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더 가혹한 잣대로 가중해서 비난해야 할 사람들은 그 반대의 사람들이다.

 박원순, 그는 서울·경기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수재였으나 유신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대학에서도 제적됐다. 그 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표를 내고 인권변호사가 된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을 세워 시민운동가로 참 많은 일을 했다. 낙천, 낙선 운동과 소액주주 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들의 힘을 모아 강자에 대적할 수 있는 신선한 시민운동이었다. 2011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그는 시민운동의 한계를 벗어나 보다 더 큰 틀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최장수 서울시장을 하면서도 개인적인 치적을 쌓기보다는, 시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서민들의 삶을 챙기며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애써왔다.

 변호사 시절엔 돈도 많이 벌었지만 모두 사회환원하고 시장이 되기 전까지 전세 아파트에 거주했다. 60평이 넘는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의 집은 책장들로 가득 채워져서 도서관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지난해 말 그가 신고한 재산은 마이너스 6억9천만 원이다. 광역단체장 17명 가운데 재산신고액이 최하위였다. 자식들한테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너희들은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이 없는 아빠’를 가진 것을 자랑스런 유산으로 알아라”

 나도 그 말을 표절해서 아이들에게 종종 해 주곤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선 아내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법적인 처벌만 받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 좋은 일 하며 살아갈 것이니 혹시 그런 일 있더라도 아빠를 너무 비난하지 말거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졸지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겪게 된 가족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빈다. 아울러서 마음고생이 클 고소인 또한 하루빨리 치유되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기원한다.

 이경재<전주대학교 금융보험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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