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에 산다] (7) 口碑文學(구비문학)採錄學者(채록학자)...朴順浩(박순호)씨
[보람에 산다] (7) 口碑文學(구비문학)採錄學者(채록학자)...朴順浩(박순호)씨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6.19 0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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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조상의 얼 發掘(발굴)
민요채록 테이프만 천여개

‘어리씨구’ ‘킁디킁’ ‘에이싸오’ 신명을 돋우는 農樂가락과 징소리와 장구·북소리속에서 반생을 보낸 朴順浩교수(박순호·47).

 그가 圓光대학교 민속학연구소장과 박물관 부관장을 맡고 있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고등학교때부터 ‘현대’시를 익혀왔던 그가 ‘과거’에 매달리게 된것은 대학교에 진학했을때 “개척분야에 뜻을 두어야 빛을 볼 수 있다”는 우리나라 제일의 민속학자 任東權(임동권 박사의 권유때문.

 任박사가 말한 ‘빛’을 찾듯 그는 국문학과 1학년때부터 詩는 집어치우고 설레는 가슴과 ‘빛’ 가득한 눈으로 口傳(구전)민요 採錄(채록)에 뛰어들었다.

 틈만나면 산으로 강으로 들로, 그곳의 노인네들을 찾아 說話(설화)와 民俗巫歌(민속무가) 찾기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왕신여고의 국어선생이 된게 1967년. 2년뒤 군산水專(수전)의 교수가 되어 또 9년, 이때까지 12년의 교직생활도 대학때와 같은 口碑文學(구비문학) 때문에 휴일이나 방학은 그에겐 더욱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군산수전에서 교양국어를 가르치던 지난 1974년, 전국민속경연대회 전북출연팀 지도를 맡게된것이 朴교수와 민속경연대회와의 첫만남.

 이해의 첫 인연으로 올해까지 15년 동안 끈기있게 이어지면서 ‘民俗全北’의 성가를 드높이고 있다.

 그가 수집해서 연출한 임실군 삼계면 두월리 들노래는 예총회장상을 받는데 그쳤으나 전국최우수민요로 선정되어 KBS에선 악보를 만들어 연주하기도 했다.

 그뒤 ▲1975년도 옥구군 대야면 塔洞(탑동)들노래 (민요부문 문공장관상) ▲1976년도 김제군 월촌면 立石줄다리기 (문공장관상) 1977년은 쉬고 원광대로 옮겨 ▲1978년 蝟島(위도) 띠뱃놀이를 출연, 최우수상을 처음 차지하면서 ▲1982년의 남원 三童굿놀이 ▲1985년의 이리농악(右道농악) ▲1988년 10월 전주에서 개최된 29회대회에서 鳳捷寺(봉천사)靈山作法(영산작법)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 올해까지 전국민속경연대회 29차례 가운데 全北팀이 최우수상 6번 차지했는데 이중 朴교수가 4번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1974년이후 올해까지 15차례의 전국민속경연대회 가운데 朴교수는 1977년도 한 해만 빼고 14회나 全北팀을 지도해서 참가했다.

 “지금은 아찔하면서도 보람찬 추억이지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뻔 했다”는 朴교수.

 朴교수의 여름은 민속지도 때문에 더 바쁘고 고된 근무가 계속되는 나날.

 1978년 그는 강의가 있는 때는 토요일만 되면 扶安 곰소까지 찻길로 3시간, 다시 여기에서 뱃길로 위도까지 3시간.

 폭풍주의보 때문에 여객선이 묶여 빈 모랫배를 타고 나오다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산더미 같은 파도속에 내던져졌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적도 있었다며 아슬아슬했던 옛일을 회상해 본다.

 올해 全州에서 이북5道를 포함 전국 29개, 市道 30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제29회 민속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朴교수팀은은 너무나 질적인 자료를 발굴, 재현해서 ‘연속해서 최우수상을 全北에게 줄 수 없다’는 이유로 문공부장관상에 그쳤던 일도 있다.

완주군 용진면 鳳捷寺(봉천사) 靈山作法(영산작법)을 발굴했으나 이 절의 스님은 대부분이 대처승. 그때문에 全州등지로 뿔뿔이 흩어진 스님들을 모으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靈山作法(영산작법)이란 죽은 사람의 49齊(제)를 지내는 불교의식으로 노래와 춤으로 死者(사자)의 영혼을 극락세계에 보내 드리는 의식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서울(西道)과 全州 등 두가지의 靈山作法(영산작법)이 있는데 서울의 그것이 京畿道(경기도) 민요조인 반면 全州 영산작법은 육자배기 가락으로 소리가 우렁차고 간드러지며 춤사위와 율동이 훨씬 우아하다.

 그러나 우아하다고 해도 엄숙한 불교민속. 어떻게하면 대중의 흥미를 돋울수 있느냐가 문 문제였다.

 그가 여생을 걸고 기어코 끝내겠다는 全北구비문학 대계가 말하듯 神話·전설·민담·민요·무가 등 구비문학에 대한 그의 집념은 거의 광적이다.

 세월과 함께 제보자와 歌唱者(가창자)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좇기듯 다급하기만 하다.

 그가 1982년 7월부터 남들은 편히 쉬는 여름방학 또는 겨울방학을 주로 이용, 1985년까지 4년동안 수집한 설화가 민요·무가는 테이프로 1천여개, 2백0자 원고지로 무려 1만9백매.

 한국구비문학 井邑시·井邑군편(709쪽)과 群山시·沃溝군편(1,152쪽) 및 전남 昇州(승주)군편(1,008쪽)으로 완성되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의해 차례로 출간되었다.

 이에 이어 시작한 裡里시와 益山군 관내의 구비문학수집작업도 현재까지 테이프 50개(원고지 5천장분)에 수록, 머지않아 이리, 익산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유종식 記
 김재춘 옮김
 1989년 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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