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촌에서 써내려가는 100행의 이야기
선미촌에서 써내려가는 100행의 이야기
  • 이지영 도민기자
  • 승인 2020.06.04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5월 30일 목요일, 성매매 집결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선미촌의 한 골목,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7시가 되자 ‘물결서사’라는 동네 책방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연령대도 다를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초면이다. 낯선 듯 익숙하게 인사를 하고, 누군가가 가져온 간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미리 정해진 시인의 시 8편을 돌아가며 낭독하였다.

 그리고 낭독한 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인의 언어를 입어보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100행 쓰기’를 시작하였다. 정해진 주제도 어떠한 형식도 없다. 그날 다룬 시인의 옷을 걸쳐본다는 느낌으로 일기를 쓰듯, 시를 쓰듯, 편지를 쓰듯 자유롭게 써내려간다.

 100행을 다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부담 없이 연필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끝나면, 서로가 써내려간 이야기를 들으며 박수도 보내고 응원도 한다.

 아무도 평가하지 않고 평가받지 않으며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함께 하지만 개인이 살아있는 시간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임주아 시인은 “선미촌이라는 공간에서 저녁에 모여 시를 쓰는 작은 역사를 만들고 있다. 시민들이 그리고 동네주민들이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힘이 된다. 시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함께 하는데,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표정으로 써내려가는 연필소리를 들을 때 그 모습이 참 좋다. 몰입하는 모습이 뿌듯하다. 검열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가보는 기분으로 자유롭게 쓰고 있다. 서로가 바라는 것 없고, 좋아서 챙기고,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느슨한 예술적 연대가 신비롭다. 2주의 한번이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한 달이 주는 그리움은 익숙해지다가 다시 설레는 시간이다. 작품성은 뛰어난데, 비대중적인 시인들을 한 분씩 골라 시인의 결을 느끼고 있다. 많은 분들이 다루는 시인의 시집을 들고 오시기도 하고 이곳에서 구매하기도 하는데, 유명하고 대중적이지 않아도 내가 접해보고 좋아서 시인을 응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100행 쓰기는 큐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주민 김은숙씨는 “100행 쓰기를 함께 한다는 것은 생활의 활력소라고 생각한다. 일상이 바쁘고 지치지만 그곳에 가면 종합비타민을 먹은 것처럼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물결서사는 7명의 작가들이 모여 당번제로 돌아가며 운영되며, ‘100행 쓰기’는 2019년 10월에 첫걸음을 시작, 코로나19로 인한 3월, 4월을 제외하고 6번의 만남을 이어왔다. 책방이 문을 닫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하며,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SNS를 통한 활발한 홍보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지영 도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