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史庫)의 고장 무주
사고(史庫)의 고장 무주
  • 장수=송민섭 기자
  • 승인 2020.04.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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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사고 조선왕조실록 봉안행렬 재연 기대

 올해는 조선왕조실록 봉안행렬 및 봉안식 재연행사를 제24회 무주반딧불축제장(9월5~13일)에서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조선왕조실록 봉안행렬 및 봉안식 재연행사는 적상산 사고로 실록을 봉안하기 위해 도착한 관원들의 환영식을 비롯해 적상산사고에 실록을 봉안하기 전 무주관아에 보관했던 보관식, 그리고 사고로 이동하는 봉안행렬과 사고에 도착해 진행하는 봉안식, 그리고 고유제 등을 재연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무주군청과 무주전통테마파크 일원에서 처음 펼쳐져 주민과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편집자 주)

 ◆“자긍심이어라”

 당시 조선왕조실록 봉안행렬 및 봉안식 재연행사는 무주문화원이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 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진행된 것이다. 실록 환영 행렬과 무주 관아에 보관하는 보관식, 사고에 실록을 안치하는 봉안식 등의 순으로 진행돼 인근 주민은 물론, 무주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기록에 의하면 실록의 이동은 엄숙한 국가 의례였다. 한양에서 이송된 실록이 무주관아에 도착하면 대규모의 환영식이 펼쳐졌고, 관아에 임시로 보관했다가 관상감 관원이 정해준 날짜와 시각에 사고지로 이동했다. 관아에서 사고(史庫)로 이동할 때에는 의장대가 갖춰져 풍악을 울리며 행진했다.

 무주군과 무주문화원은 이러한 조선왕조실록 봉안행렬과 봉안식을 무주만의 특화된 전통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킨다는 방침으로 올해는 무주반딧불축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조선 후기로 시대를 정해 진행했던 작년 봉안행렬 및 봉안식 재연을, 올해는 적상산사고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이동이라고 추정되는 1634년 묘향산 사고본 이안으로 테마를 정해 진행할 계획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복식 고증 등을 통해 행사가 더욱 정교하고 현실감 있게 재연될 것으로 보여 군민의 자긍심은 높이고 역사 지킴이었던 무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도 될 것으로 보인다.

 ◆적상산에 스민 조선왕조의 숨결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연, 월, 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역사서로, 총 1,893권 888책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양이 방대한 것은 물론, 외교·정치·제도, 법률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물로 꼽힌다.

 1973년 12월 31일 조선왕조실록 필사본·인쇄본, 정족산본과 태백산본 등이 일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됐으며, 1997년 10월 1일에는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이자 자료이며 가치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인쇄·출판된 실록은 교정본을 합해 총 5부가 완성됐으며 이는 춘추관·마니산·태백산·묘향산·오대산에 설치된 사고에 각 1부씩 보관됐다.

 이 가운데 묘향산사고가 후금과의 관계 악화로 옮겨져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고 1610년(광해군 2년) 무주 적상산성을 수리하고 1614년에는 적상산사고를 창건해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모두 옮기기에 이른다.

 인조 12년(1634)까지 묘향산사고에 있던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실록 259책과 춘추관에 봉안돼 있던 광해군일기 39책이 함께 이곳으로 옮겨와 봉안됐다.

 이후 인조 19년(1641)에는 선원각(璿源閣)을 건립하고, 조선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을 봉안함으로써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역사를 말하다’

 296년 간 조선 제1대 왕인 태조에서 제25대 왕인 철종까지(472년 간)의 역사를 피와 땀으로 온전히 지켜왔던 적상산사고도 점점 그 기능을 다하게 되었는데 이후 장서각에 보관해 오던 적상산사고본 실록은 광복직후 실록 도난사건으로 산질(散秩)이 생겨나게 되었고, 1950년 6·25 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가 현재는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주의 역사와 함께 한 적상산사고 실록각은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선원각은 인근 안국사(安國寺) 경내로 옮겨져 천불전(千佛殿)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643년 사고를 지키고 산성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산성 안에 창건했던 호국사는 1949년 여순반란사건 여파로 소실되었다. 적상산조선실록 사고지마저도 적상산양수발전소 건설(1988~1995)로 인해 안국사와 함께 상부댐(적상호)으로 수몰됐으며, ‘적상산사고지 유구(遺構)’는 적상호 상부 쪽으로 실록각과 선원각을 복원해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안국사는 호국사지로 옮겨 호국사와 함께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주군지상권, 적상산사고 실록 형지안, 무주적상댐 수몰지구 발굴조사보고서)
 

 ◆무주문화원 맹갑상 원장
 “무주만의 역사문화와 콘텐츠로”

 적상산사고는 조선 472년의 역사기록을 296년 동안 온전히 지켜낸 자랑스러운 역사·문화유산이다. 역사·문화적 관점에서 봤을 때 무주를 있게 한 원동력인 셈이다. 무주에 실록각과 선원각이 건립되면서 무주가 현에서 도호부로 승격이 되고 안성면과 설천면 일원이 무주로 편입되는 등 무주 역사에 큰 변환점이 됐다. 적상산사고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봉안하고 포쇄를 진행하면서 무주의 역사가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조정 관료들로 인해 다양한 문물이 무주에 들어오는 계기로 적상산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라고 감히 말한다,

 봉안행렬과 봉안식을 완벽하게 재연하기에는 아직까지 고증자료나 시간 등 부족한 면이 없진 않지만 무주만의 콘텐츠로 정착시키려면 지속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주문화원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 봉안식과 봉안행렬이 재연되고 있다는데 큰 자부심을 느끼는 만큼 이를 후대에 널리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무주=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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