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집단학살의 현장 우금치 가다
동학농민군 집단학살의 현장 우금치 가다
  • 양태석
  • 승인 2019.10.0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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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고 전북도청도서관에서 시행하는 ‘2019 길 위의 인문학’ 수강생 24명이 김재호(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 강사와 함께 동학농민군 집단학살지인 충남 공주의 송장배미와 우금치 전적지를 다녀왔다.

 갑오농민전쟁은 조선왕조의 부패한 관료체계와 수취체계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민초들의 봉기이자, 척왜척화를 외치며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농민전쟁이다.

 특히, 서울로 가는 길목인 공주의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ㆍ일본 연합군이 벌였던 전투는, 그동안 양자 간에 벌였던 전투 중 가장 규모가 커 농민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전투였으나, 오랫동안 침략전쟁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한 일본 제국주의의 근대화된 무기와 잘 훈련된 군대의 힘에 동학농민군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전투다.

 무릇 전투는 잘 훈련된 정예요원과 전술 그리고 상대를 압도할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무엇하나 변변히 갖춘 게 없던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무라타 연발총과 개틀링 기관포 등의 가공할 위력 앞에 어찌해 볼 도리 없이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한 것이다.

 일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이 투입된 전투에서 오백여 명만이 살아남은 우금치 전투의 뼈아픈 패배는, 서울로 진격하려던 계획을 포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 농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금치 전적지를 돌아보니 생사를 가르던 그날의 총성과 우렁찬 함성은 온데간데없고, 잔디와 잡풀만 무성한 한편에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위령비만 외로이 우뚝 서 있다.

 참석자들은 “농학농민전쟁에 가담 목숨까지 던지며 그들이 얻고자 했던 자주와 평등을 누리고 사는 지금의 우리기에, 그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태석 도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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