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을 빚는 도공에서 식품명인까지 농식품명인 라희술씨
혼을 빚는 도공에서 식품명인까지 농식품명인 라희술씨
  • 고창=김동희 기자
  • 승인 2019.09.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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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렵다는 식품 분야에서 수십년 이상을 종사하며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 있다. 거북이 등껍질마냥 갈라진 손이 혼을 빚는 도공에서 식품명인의 반열에 이르기까지 질곡의 세월을 짐작케 한다. 지난 11일 2019 고창군 농식품 명인으로 선정된 고인돌 황토구운소금 라희술(69) 대표를 만나봤다.

 라 대표는 도공집안이 소금에 관심 갖기까지 명가를 이어가고 있다. /편집자주

 ◆고인돌황토구운소금_천일염 비해 미네랄 3배 함량 ‘웰빙소금’

 “황토 소금은 천일염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미네랄 함량으로 몸에 좋고,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사용한 귀한 소금입니다.”

 지난 21일 오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 ‘고인돌황토구운소금’. 공장 곳곳에는 소금을 담을 황토옹기 제작부터 고창지역 염전에서 5월에 채취한 천일염을 공수해 간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라희술 명인은 “염도가 낮고 미네랄이 풍부한 고창 천일염에 무기질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소나무 꽃가루가 더해지면 그야말로 보물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황토소금은 소금을 굽는 황토 가마에 1,000여 개의 황토옹기 안에 들어간 소금을 넣고 800℃ 뜨거운 불에서 12시간을 구운 뒤 자연 냉각시키면 소금의 불순물은 제거되고 황토의 미네랄이 흡수되는 ‘황토구운소금’이 된다.

 황토에서 구워진 소금은 짠맛과 쓴맛이 덜해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난다. 흔히 먹던 소금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짭조름한 첫맛 뒤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맛들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라 명인은 “정제염에 익숙한 현대인에겐 생소한 맛이겠지만 황토로 구워진 소금은 인체에 해로운 물질들이 제거돼 짠맛도 덜하다”고 설명했다.

 황토소금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조상들의 건강 비법이었다. 실제 조선시대 왕족 전의들이 전통비방(傳統秘方)으로 황토옹기에 소금을 담고, 황토가마에서 구워 유해성분들을 제소시킨 궁중비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창의 특산품인 복분자와 선운사 녹차로 유명한 곳이다. 청정지역에서 채취한 복분자를 첨가한 것도 고인돌황토소금만의 차별성으로 건강소금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6대째 도자기 빚는 도공집안..불의 달인

 라희술 명인은 6대째 도자기를 만들어 오고 있는 도공집안이다. 17세부터 아버지 라만동 명인을 도와 도자기 굽는 일을 시작했다. 라희술 명인은 “어려서부터 흙 만지고 노는 게 좋았다. 6남매 중 장남이었던 내게 자연스럽게 도예는 삶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라 명인은 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000도에서 구워내는데 할 때마다, 들어간 자리마다 다른 작품이 나온다는 것. 요변 현상으로 수백 개가 나오면 수백 개가 모두 다르다고 했다.

 라 명인은 “늘 똑같은 그릇이 나오면 설렘도 없다. 가마에서 꺼낼 때마다 다른 게 나오기에 늘 궁금하고 설렌다. 옹기가 식기 전 가마를 열면 깨지는데 지금도 궁금증을 참지 못할 정도다. 그 설렘이 있기에 좋은 작품이 나온다. 설렘이 있기에 좀 더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장작불의 달인이 된 그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2000년대 초 중국산 저가 그릇의 공세 속에 국내 도자기 사업이 침체기를 겪었던 것.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소금’이 떠올랐다.

 라 명인은 “고창 황토의 우수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인근에 염전이 있어 소금 수급이 원활하다는 장점에 구운소금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나트륨이 해로울 뿐, 황토구운소금은 해롭지 않아”

 구운소금을 이해하려면 소금의 종류부터 알아야 한다. 소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99.5% 이상이 염화나트륨으로 이뤄진 정제염이고, 또 하나는 바닷물을 그대로 농축시켜 얻어낸 천일염이다. 천일염의 좋은 물질은 최대한 끌어올리고, 미량이라도 있을지 모르는 중금속을 제거한 것이 바로 황토에 구운소금이다. 라 명인은 서해안에서 나오는 천일염을 사용한다.

 라 명인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가 기능성 소금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먼저, 황토그릇에 구워낸 소금에 복분자, 솔잎, 녹차, 함초, 다시마 가루를 섞는다. 이후 약한불로 다시 구워 ‘약이 되는’ 명품 기능성 소금이 탄생한다. 다시마 구운소금은 특허까지 출원했다. 라희술 명인의 황토소금은 미국 수출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지에서 바이어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공장 앞마당에는 장독대도 있다. 구운소금으로 담근 간장, 된장이 이 항아리들 속에서 선운산 정기를 받아 익어가고 있었다.

 ◆‘미식도시 고창’의 자존심-농식품 명인

 고창군은 지역 농식품의 명품화와 음식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해마다 ‘농식품 명인’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지정된 명인에게는 명인 인증서와 인증패 교부는 물론, 고창군 농식품 명인 현판증정, 마케팅 등이 우선 지원된다.

 지난해 초대 명인에는 박앵두(엿류), 안문규(식초류), 김효심(장류)씨 등이 선정됐었다. 올해도 고창 맛의 자존심을 건 20여명의 달인들이 지원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창의성, 보호가치, 향토성, 전문성, 식품의 맛, 경제성(보급가치) 등에 중점을 두고 꼼꼼하게 심사했다.

 올해의 명인으로 선정된 라희술 명인은 “부친이 이루지 못한 인간문화재와 지역의 일꾼으로 거듭나고 싶다”며 “명인이란 칭호가 부끄럽지 않게끔 농생명식품수도 고창, 맛의 도시 고창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고창=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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