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손맛, 비빔밥이 빵 속에 ‘전주비빔빵’
할머니 손맛, 비빔밥이 빵 속에 ‘전주비빔빵’
  • 김장천 기자
  • 승인 2019.07.1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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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서노송동 ‘전주빵카페’를 처음 찾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전주비빔빵’ 포장지에 ‘크림치즈빵’을 넣거나 제품 수량을 착각해 잘못 내보는 때도 있다. 근로자 상당수가 고령의 할머니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매장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빵 포장지도 다른 곳과는 달리 글씨가 크고 굵다. 눈이 침침한 할머니 근로자를 배려하기 위해서다.

 빵과 과자, 디저트를 만드는 ㈜천년누리푸드는 사회적기업이다. 그 종류만 해도 비빔빵, 우리밀 식빵(우유, 쑥, 통밀), 호밀견과스틱, 초코파이 등 수십 가지가 넘는다. 물론 모든 음식재료 국내산만을 사용한다.

 “전주빵카페는 6가지의 생산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6가지 원칙은 ‘100% 우리밀’, ‘유기농 흑통밀’, ‘직접 삶는 국산 팥앙금’, ‘천연발효종’, ‘저온숙성’, 국내산 농산물’입니다”. 장윤영 대표의 말이다.

 이곳의 하루 시작은 매일 새벽 4시부터 시작한다. 전날 삶은 팥을 상품별로 나누고, 일부 직원들은 신선한 채소를 공수하기 위해 전통시장으로 떠난다. 그리고 새벽 6시부터 각양각색의 빵과 과자류는 오븐 속으로 들어간다. 오롯한 제품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천년누리푸드의 태동은 지난 2012년 ‘노인일자리 사업단’에서 시작한다.

 “노인일자리 사업단을 운영하면서 공유경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맛의 고장 전주’란 강점을 살려 국산 재료로 제빵업을 하면 어떨까?’라는 심사숙고 끝에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4년 ‘전주빵카페’를 오픈했다. 60대 이상 할머니 4명과 중고 오븐 한대가 전부였다. 수입 밀이 들어오는 저가 시장에서 국산 밀을 쓰면서 경쟁하려면 차별화가 필요했다. 가격경쟁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 결과 탄생한 게 ‘전주비빔빵’이다.

 “전주하면 비빔밥이 유명하잖아요. 비빔밥을 빵에 접목시키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고 여겼지요. 선물용으로 포장할 수 없는 비빔밥의 약점을 상쇄시킬 수 있잖아요”.

 장 대표는 ‘전주비빔빵’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전주에서 할머니들 사이에 이어져 내려온 비빔밤 비법(고추장 소스 제조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빵과 조합이 어울리는 소스 개발에 성공했다. 가장 큰 문제였던 비빔밥 소스를 첨가할 때 빵이 눅눅해지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 수분 조절법으로 특허도 받았다.

 천년누리푸드는 이때부터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2015년 8월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에 이어 이듬해에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시장 진출 3년 만에 매출 6배 성장(2018년 기준 20억원)을 일궈냈다. 흔히들 ‘중고오븐 한 대의 기적’이라고들 한다.

 경쟁이 극심한 제과시장에 뛰어든 천년누리푸드는 차별성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할머니의 손맛이 가미된 신선하고 건강한 빵을 만든다’는 컨셉으로, 빵의 주재료인 밀은 100% 우리밀로 만들어진다. 우리 밀은 모두 전주와 익산 등지에서 가져온다. 단팥빵에 들어가는 팥은 장수군 산골 할머니 30여명이 공동으로 수확하는 토종 팥으로만 만든다. 다른 채소들은 인근 시장에서 조달한다.

 천년누리푸드는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제공도 적극적이다. 현재 직원 39명 가운데 과반수가 다문화 여성과 노년층, 장애인 등이다. 물론 제과제빵 기능장, 식품영양 석·박사들과 청년들이 함께 일한다. 연령층은 19세부터 80세까지 다양하다.

 “수익의 대부분을 사회적약자 일자리창출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공유경제를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성공신화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청년 직원과 고령자 근로자 간에 세대 갈등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 재투자를 하다보니 기계 노후화와 작업공간 협소 등도 문제다.

 장 대표는 “사회적기업의 특성중 하나는 노동집약적이고, 완제품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며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사회적기업이 이용할 수 있는 공동작업장을 설치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천년누리푸드는 전국 사회적기업 최초로 전주역에 올해 4월 입점했다. 전주역의 월 임대료는 1,600만원으로 부담이 크지만, ‘전주비빔빵’의 브랜드 제고와 ‘사회적기업도 하면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 대표의 신념이 작용했다.

 장 대표는 “기회가 된다면 전주를 대표하는 장소에 입점도 도전해 보겠다”며 “할머니들의 손맛을 무기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내비쳤다.

 김장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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