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죽이기가 아니라 일반고 살리기, 공교육 정상화이다.
자사고 죽이기가 아니라 일반고 살리기, 공교육 정상화이다.
  • 김용남
  • 승인 2019.04.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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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사고 문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 기준점수를 낮추라고 하더니, 서울에서는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를 사실상 ‘집단 거부’하고 나섰다. 이는 벼랑 끝 전술로 평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자사고는 왜 평가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가?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자사고는 무엇인가?

 (자사고는 영리병원과 닮은 꼴이다)

 영리병원 문제를 생각해 보자.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질 좋은 의료서비스, 외국인 환자 유치에 따른 의료산업 강화 등을 장점으로 내 세운다. 반대쪽은 공공의료체계 붕괴, 진료비 상승으로 인한 의료 양극화 등을 우려한다. 영리병원이란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의료 민영화(정확하게는 의료 사유화)를 의미한다. 의사나 비영리법인만 병·의원을 개설할 수 있는 현 의료법 체계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주식회사 형태의 병·의원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병·의원이 늘어나게 되고 환자 유치 경쟁이 심해져 고급화·전문화 등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의료기관이 증가하면, 의료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의료비가 폭등하게 된다. ‘의료를 민영화’한다는 것은 ‘이윤이 선’이 되는 장사꾼에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영리병원의 확대로 이어져 의료기관 난립과 과잉진료나 부적절한 의료행위의 범람이 발생하고, 국민건강보험제도를 기반으로 한 의료체계 전반이 무너져 의료의 공공성이 무너질 우려가 커진다.

 

 (자사고는 교육 불평등의 기원이다)

 자사고도 이와 유사하다. 영리병원이 의료의 공공성을 무너뜨린다는 우려는 자사고가 교육의 공공성을 무너뜨릴 우려로 이어진다. 교육의 공공성은 평등교육에서부터 시작한다. 평등교육은 헌법 제31조 제1항의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에 근거한다. ‘가난하더라도 누구나 공부만 열심히 하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헌법정신은 교육의 기회균등으로 ‘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을 요구한다. 그런데 자사고는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학생 선발부터 특혜다. 일반고보다도 먼저 특차로 선발하여 우수한 학생을 뽑아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특혜다. 학비는 어떤가? 우리 교육은 이제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자사고의 학비는 대학교의 학비와 맞먹거나 능가한다. 수업을 따라가려면 고액학원에 다녀야 하고, 일반 가정의 학부모들이 학원비에 높은 학비를 감당하려면 그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차 선발과 높은 학비! 자사고는 교육 불평등의 기원이다. 정부는 1970년대 입시경쟁 교육의 폐해로 인해 일류 중·고등학교를 폐지했다. 일류 중학교에 들어가려고 초등학교에서부터 과외공부를 시키고 재수를 하는 폐해를 없애려고 학교 평준화를 시행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가려는 경쟁 교육이 벌어지고 있다. 이 경쟁 교육의 끝은 어디인가? 학벌 지상주의다.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는 저출산까지 이어진다. 일본의 한 신문은 한국의 저출산 원인은 학벌 지상주의라고 말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는 학벌 지상주의와 이에 따른 사교육 열풍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의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일본 닛케이 신문 2019. 3. 28. 자)라고 보도했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자사고는 자체 평가에 있어서 서울 일류대학에 몇 명 갔다는 것을 내세운다. 이것은 결국 학벌 지향주의를 끊임없이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자사고가 거부하는 교육청 평가 기준은 ‘학교 운영’ 분야에서 ‘고교입학전형 영향평가의 충실도’, ‘교육과정 운영’ 분야에서 ‘교실 수업 개선 노력 정도’ ‘학교·교육과정 운영 분야’ 등이다. 이는 자사고가 사회통합 전형을 위하여 지켜야 할 지표이고 자사고 지정에 따라 법적으로 부여된 사회적 책무이다. 자사고 재지정 기준점수를 80점에서 70점으로 내리라고 20여명의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이 서명하고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런 주장의 핵심은 지역인재 양성이라는 자사고의 순기능을 강조한다.

 

 (학교 서열화는 일반고를 죽인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자사고가 조장하는 학벌 지상주의는 고교 서열화를 극대화해 대한민국 교육 전체를 망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교육도 망치고 있지 않은가? 학교 서열화가 지역의 일반고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사고가 배출한 성적 좋은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로 올라가고 지역에 몇 명이 남아 있는가? 우리 지역 의과대학 병원들이 수련의를 확보하지 못해 겪고 있는 고충을 보라. 서열화된 학교 현장은 입시교육과 경쟁 교육으로 황폐해지고 있다. 자사고의 역기능은 결국 학벌 지상주의를 넘어서 자사고의 확대와 자사중 설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연 이래도 자사고 죽이기인가? 일반고 살리기이다! 자사고도 일반고와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해야 하고 교육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자사고 폐지가 아니라 평등 교육으로의 되돌림이다. 대통령과 진보교육감들의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김용남 사)전북행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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