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4, 25일 양 일간 28명의 영어교사들과 건국대에서 있었던 전국중등영어교사회(KOSETA) 발표회에 다녀왔다. 700여명의 전국 17개 시·도 대표들이 각각 20분간에 걸쳐 수업사례를 발표하고 10분 동안 질문을 받았는데 3위 입상자까지는 영국에서 개최되는 세계영어수업포럼에 참가하는 혜택이 주어진다. 경연 자체가 마치 전국체전에서 자기고장의 명예를 걸고 뛰는 선수들을 방불케 하였다.
영어교사가 영어를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유머까지 섞어가며 좌중을 이끄는 그 유창한 구사력에 순간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오가는 일정이 빠듯한데도 둘째 날 5시가 넘어서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재구성을 통한 다양한 맞춤식 교수법과 학생에 대한 열정, 교사로서의 자긍심 때문이었다. 영어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한 전문계고와 지도하기 힘들다는 중학생, 그리고 거의 원어민 수준인 특목고까지 다양한 사례는 영어교육 차체에 대한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더욱 가치 있는 것은 발표의 주제가 협업(collaboration)인 것처럼 학생도 교사도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활동이 교사가 방향을 제시하면 학생들이 모둠으로 활동하고 끝에는 발표하는 형식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내신관리를 위한 이기적인 학습방식과는 달리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사는 방식도 학습과 병행하고 있었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법이 아닐까 해서 더욱 매료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영어만 잘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영어권으로 유학을 가던 10여 년 전과는 달리 영어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졌다. “이젠 영어 몰라도 괜찮아요. 번역기로 검색하면 다 해줘요.” 이는 외국어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 주변에서 자주 듣는 얘기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여행 중에 휴대폰번역기에 대고 말하면 신기하게도 해당 언어로 번역해준다. 또한 요즈음은 인공지능전자기기로 요청을 하면 대답해준다.
그렇다고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외국인과 단순히 몇 개의 간단한 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영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영어가 우리 생활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고 그만큼 수준이 높아진 탓이 아닐까? 영어는 우리의 생활수준과 직접 관련이 있다. 올해에 본 일본 북해도의 한 식당 종업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었고 핀란드에서 만난 러시아에서 독립한 에스토니아 출신 버스기사의 “취업하기 위해 영어를 배웠어요”란 말은 더욱 현실적이다.
우리고장도 마찬가지다. 연 천만 명이 넘게 찾는다는 한옥마을에도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한 찻집에서 만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온 여행객들과 대화를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얼마 전 우리 일행을 보고 몇 차례 눈길을 보내 다가가니 우리고장의 볼거리와 교통수단에 대해 물었다. 이야기가 길어져 쌍화차를 대접하고 명함까지 주고받은 적이 있다. 적은 사례지만 관심을 기우리면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 특별강연을 한 이범(전 서울교육청 정책관)은 영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외수출의존도가 일본이 35%인데 반해서 우리나라는 85%라는 것이다. 흔히 새로운 반도체 상품이 출시되면 기업의 총수들이 외국에서 영어로 설명회를 갖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바로 기업은 물론 국가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정치가가 취업이 안 되면 외국으로 나가라고 해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차트에 오르면서 한류의 붐을 통한 우리말의 세계화가 화제에 올랐다. 우리말을 전달하는 매체는 바로 영어로 통할 때 훨씬 용이하다. 더욱이 국경이 없이 세계를 여행하는 시대에 어디서나 문화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영어는 잘 할수록 유익하다. 지금도 스웨덴의 노벨방문관 앞에서 팔순 노부부와 한 긴 대화는 세상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국방호(전주대 객원교수·전북중등영어교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