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특별기고] ‘호랑이가 나타났다’
[19대 대선 특별기고] ‘호랑이가 나타났다’
  • 정병진
  • 승인 2017.04.1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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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 칠웅(七雄)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위(魏)나라 혜왕(惠王, BC400~BC334)이 전쟁에 진 후 조(趙)나라에 태자를 인질로 보내게 되었다. 이때 태자를 수행하여 함께 인질로 가게 된 방총이란 사람이 있었다. 방총이 혜왕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혜왕이 답하기를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하였다. 방총이 다시 물었다. “두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혜왕이 답했다. “의심스럽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네.” 방총이 또 다시 물었다. “그럼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똑같이 말한다면 왕께서는 어떠시겠습니까?” 혜왕이 이번에는 “그 말을 믿을 것 같네” 라고 고쳐 말했다. 그러자 방총이 말했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똑같이 말하면 그런 터무니없는 일조차 사람들은 사실로 믿게 됩니다. 조나라는 위나라 시장보다 훨씬 멀리 있습니다. 제가 조나라에 가 있는 동안 저를 두고 험담을 하는 자가 세 사람 보다는 많을 것입니다. 혜왕께서는 그들의 험담을 귀담아 듣지 말아 주십시오.” 이에 왕은 “걱정 말게, 나는 내 자신의 눈 밖에 믿지 않는다네” 라고 약속해주었다. 방총이 위나라를 떠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방총을 헐뜯는 자가 나타났다. 혜왕은 방총에게 언약까지 해주었건만 방총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고 태자가 풀려나 귀국할 때도 방총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제19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는 역사적인 선거가 불과 얼마 앞으로 다가왔다. 과거에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무신을 돌리기도 하고 술을 곁들인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돈봉투를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적발될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국민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비용대비 효과도 떨어지게 되었다. 반면, 거짓된 사실의 유포는 정책보다는 인물검증성격이 강한 우리나라 선거현실에서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선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 비용도 크지 않을뿐더러 소문의 출처를 밝히기도 어려워 처벌될 위험도 적다. 더구나 한번 만들어진 후보자에 대한 거짓된 이미지나 사실을 선거 전까지 바꿀 시간적 여유 또한 절대 부족하다. 한편,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이나 문자메시지, 각종 개인 SNS 등을 통해 허위사실은 폭발적으로 퍼져 나간다.

위 3인성시호(三人成市虎)의 고사에서 보듯이 터무니없는 일 조차 세 사람이 합심하여 사실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물며 선거판에서는 더욱 교묘하고 그럴듯하게 거짓사실을 유포하기에 이는 쉬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선거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공직선거법 제250조는 당선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일정한 거짓사실을 공표한 경우 엄중히 그 책임을 묻고 있다. 또한 선거관리위원회는‘비방·흑색선전 전담팀’을 구성하여 이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판례는 어떤 사실이 거짓이라고 확신하는 경우 뿐 아니라 ‘그 진실성에 강한 의문을 품고서도 감히 공표한 경우’에도 ‘허위사실공표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공표라 함은 단 한사람에게 말하여도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옮길 가능성(이른바 전파가능성이론)이 있는 경우도 포함한다.

말은 그것이 내 입을 떠난 순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한 번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번 내 입을 떠난 말은 되돌릴 수 없으며 선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지면서 국민여러분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후보자에 대한 검증열기가 높아가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너무나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다만, 그러한 열기에 휩싸인 나머지 ‘선거시장에서 없는 호랑이를 만들어 내는 우(愚)’를 범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을 당부드린다.

남원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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