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가을편지
  • 이경신
  • 승인 2013.10.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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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동반자 Y언니에게.

구르는 낙엽만 봐도 깔깔 거리던 그 계절, 가을이 오면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던 당신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일곱색깔 무지개 빛 꿈을 그리던 여고시절, 뒹구는 낙엽을 책갈피에 꽂아주며 문학을 이야기하고 꿈과 희망을 설계해주던 당신 덕분에 지금에 내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당신은 그저 남 보기에 평탄할 것만 같았던 내 삶의 애환을 잘 다독여 주었고 때론 복잡한 가정사의 한 단면을 하소연하면 언제나 양보의 미덕으로 나를 달래 주었지요.당신의 그 따뜻한 품에 기대어 오늘도 까닭모를 가을 편지를 띄워 보렵니다.

Y언니. 아침, 저녁으로 부는 소슬바람을 핑계로 엊그제는 중년여성들의 휴식공간인 찜질방에 다녀왔습니다. 다소 철이 이르긴 하지만 갱년기를 앞둔 우리들에겐 찜질방만한 효자가 따로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켜켜이 불어가는 삶의 무게를 후끈 달아오른 온돌에 지지며 삶은 계란을 까먹는 쏠쏠한 재미 또한 찜질방의 수다를 더욱 흥겹게 하는 단골 양념이지요. 한참 수다 삼매경에 빠졌는데 TV 종편채널에서 기초노령연금 공약파기와 관련해 출연자들이 열을 올리며 토론을 벌이더군요. 그러자 다소 성격이 급한 친구 A가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키로 공약을 했으면 지켜야지 당선됐다고 오리발을 내민다”며 대통령님에게 힐난을 퍼붓자 친구 B가 슬그머니 소매를 잡아끌며 “옛날 같으면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혀가거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해야할 여편네”라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습니다. 평소 신중하면서도 소심한 B는 “요즘 국정원 개혁이나, 남북대화록 폐기 등 일련의 사태를 볼 때 옛날 군복에 까만 선글라스를 쓴 시대의 공안통치가 다시 시작됐다고 사람들이 수근 거린다”며 친구 A의 입을 삶은 계란으로 서둘러 단도리에 나섰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우리는 웃음을 빵 터트렸지만 한번 입이 뚫린 A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팍팍한 삶을 그대로 토해냈습니다. A는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못할 말이 어디 있느냐”며 “기초노령연금 공약파기는 무조건 표를 얻고 보자는 고약한 심뽀인 만큼 우리 국민들이 다시는 속아서는 안된다”고 열을 올렸습니다. 또한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데 떨어진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며 양도세와 취득세 감면 등 정부가 내놓은 ‘4.1부동산 대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사실 A의 말대로 양도세와 취득세를 감면해주면 매매 등이 늘어나 아파트 가격은 오르겠지요. 하지만 전세와 월세대란에 허덕이는 우리네 서민들이 대출을 늘려 결국 아파트를 되사야하는 현실은 아랫돌 빼내 윗돌괴기로 아파트 가격의 일시적 상승과 안정은 이뤄지겠지만 빚쟁이 서민들은 빚만 곱사등처럼 이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지요.

Y언니, 참으로 팍팍한 인생살이 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나누던 대화 끝에 우리는 ‘낀 세대’라는 자조(自嘲) 섞인 말이 생각납니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로 태어나자 마자 경쟁이란 광야에 내몰려 평생 고생과 IMF의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우리지만 여전히 부모세대를 봉양해야하는 무거운 짐과 자식세대들을 부양해야하는 운명을 짊어진 고달픈 ‘낀 세대’ 말입니다.찜질방의 수다에 만족해야 하는 우리네 삶이지만 노인세대들이 공약으로 이뤄진 최소한의 연금을 받는 복지, 그리고 전세, 월세대란을 벗어나 어느 정치인의 대선후보 슬로건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넉넉히 누릴 수는 없는건가요.

Y언니. 오늘도 무심코 잡은 펜이 하소연으로 흘렀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가을하늘처럼 맑고 푸른 날이 올 것 입니다.그 옛날 당신이 나에게 선물했던 소설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는 글귀처럼…

이경신<민주당 전북도당 부대변인·민주당 완산을 여성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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