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well being) 혹은 웰 다잉(well dying)
웰빙(well being) 혹은 웰 다잉(well dying)
  • 김형준
  • 승인 2013.10.10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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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우리는 삶(Living)이라고 한다. 한편, 늙고 병들어 생명의 불꽃이 서서히 꺼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임종(dying)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가기 때문에 그 사이의 시간 즉, Living도 결국 죽어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니 일종의 임종(dying)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삶과 죽음(Living is dying!)이 동전의 양면처럼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한동안 well being이라는 말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최근 의학과 사회제도가 발달하면서 죽음에 대한 의미도 많이 바뀌었다. 우선 평균여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발달한 의학으로 과거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생명연장이 가능해졌다. 그러면서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연장을 연장하는 것이 의술의 목표인 것을 넘어 사람으로서 평안하고 존엄한 죽음, 즉 well dying을 하도록 돕는 것이 의학의 새로운 목표가 아닐까 하는 개념이 생겼다.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 해 20만 명의 암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있고 4명 중 한 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문제는 말기암 환자의 경우 사망 3개월 전에 전체 의료비의 절반을 쓰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3개월 동안 시행된 치료가 강력한 항암제, 기도삽관, 인공호흡, 중환자실 등 대부분 환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부담을 주는 매우 침습적인 처치라는 점이다. 인생의 마지막 3개월을 약물에 취해, 기계에 매달려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와 ‘하루라도 편히 살다 가고 싶다’는 개인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의 문제는 비단 환자 자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의료자원이 희망 없는 말기 환자에게 집중되어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국가적으로 의료비를 급격히 상승시켜 이중 삼중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지난 8일 보건복지부는 ‘말기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몇몇 제도 개선을 한다고 발표하였다. 완화 의료는 이런 말기 암환자가 신체적인 고통을 덜 느끼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걸 목적으로 하는 의료 서비스를 말한다.

 복지부에 의하면 앞으로 ‘호스피스 완화 의료팀(PCT)’ 제도와 ‘가정호스피스 완화 의료’를 도입하게 되는데 병원 내 혹은 가정방문 완화 의료팀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나 심리치료사로 구성되어 완화 의료서비스를 제공토록 한다고 한다. 이러한 완화의료 서비스를 통해 환자는 심리적으로 안정될뿐더러 가족의 경제적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복지부는 발표하였다. 국내에서 암으로 숨진 환자의 완화의료 이용률은 2011년을 기준으로 11.9% 수준으로 한해 암 사망자가 75,000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호스피스 병상 수는 전국에 약 880여 병상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 분야 선진국인 영국 수준이 되려면 호스피스 병상이 2,500개 필요하다. 싱가포르·대만 수준만 되려 해도 1,200~1,400병상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고령화 진행에 따라 말기암 환자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이번 발표에서 “2020년까지 전국 호스피스 병상을 1,400개로 늘리겠다”고 했다. 미국은 호스피스 시설이 넉넉해 암 환자뿐 아니라 치매·중풍 환자도 호스피스 혜택을 본다. 미국은 지난해 기준 전체 사망자 10명 중 4명이 호스피스 시설에서 세상을 떠났다. 호스피스에서 숨진 사람 중에는 암 환자가 가장 많지만(37.7%) 치매(12.5%), 심장질환(11.4%), 호흡기질환(8.5%) 환자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그럴 여유가 없어 통증이 심한 암 환자만 받아주고 있는 실정이고 그 시설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번 복지부의 발표는 환영할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활성 되려면 두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에 대한 적정한 건강보험 수가가 책정되어야 한다. 현재에도 호스피스 병상이 활성 되지 못한 이유는 낮은 수익성 때문에 대부분 병원이 외면한 결과이다. 이에 대한 복지부의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자신의 결정권을 존중해 스스로 연명치료를 원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사전 의료지침(의료유언장)제도가 마련되고 이것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게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 환자에게는 자기결정권과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보장하고 의료진에게는 의료적 조치를 좀 더 소신껏 펼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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