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가슴으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 이동희 
  • 승인 2013.10.0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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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저물었다. 추석연휴가 주중에 있어 앞뒤로 휴일을 조정한 회사들이 많다고 한다. 어느 일터는 길게 9일까지 휴일을 늘려 잡은 데도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월차 연차 등을 앞당겨 모처럼 맞은 한가위 연휴를 제대로 누리려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매년 되풀이되던 귀성전쟁-귀경전쟁이 올해만은 그리 가혹하단 소리가 적은 걸 보면 그렇다.

 좋은 현상이다. 살려고 일하는 것이지, 일하고자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을 일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쉼=휴식’을 ‘노는 것=게으름’으로 부도덕하게 여기는 폐습이 남아 있는 듯하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마저도 피로도가 가중되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고장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적당한 휴식은 창조의 원동력이다.

 추석연휴를 보내고 맞은 사람들에게서 잦았던 후유증도 예년처럼 전쟁을 치른 후의 허무감이 덜한 모양이어서 다행이다. 모두가 여유 있는 휴가 기간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다급하게 쫓기는 상황에서는 여유가 생길 수 없다. 느긋하게 여유를 부려야 자신도 살펴볼 수 있고, 가족도 챙겨볼 수 있으며, 이웃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부터 ‘대체 휴일제’를 시행하기로 한 것은 잘할 결정으로 보인다. 설·추석 등 공적 휴일이 다른 공휴일과 겹치는 경우, 연휴 다음 첫 번째 비공휴일을 공휴일로 하는 이 제도는 우리 사회에 사람대접의 출발점이 될 만한 사건이다. 그동안 능률위주의 사고방식에서 사람본위의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마땅히 사람을 본위로 하여야 함에도 언제나 효율성과 생산성이 사람의 자리를 대신해 왔다. 사람이 빠진 자리에는 필연적으로 건조한 이념이 똬리를 틀기 마련이다. 메마른 이념은 물신주의를 불러오고, 이념투쟁을 기본 전략으로 한다.

 인본주의적 가치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이념으로 대체된 듯하다. 민주주의가 곧 자본주의요, 자본이 곧 사람됨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는 사회로 변하였다. 모든 가치와 의미, 어떤 주장과 의견도 물신주의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이런 현상이 자살률 세계 최고, 출산율 세계 최저의 현상을 낳은 것은 필연이다.

 우리 사회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만한 사건 사고의 이면에는 빠지지 않고 돈이 개입되어 있다. 고위층들의 비리와 독직사건의 내막에는 부정한 뇌물과 이권이 필수적이다.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있어서는 안 될, 있을 수도 없는 참혹한 비극의 뒤안길에도 돈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가슴의 따뜻한 자리를 머리의 차가운 이념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저마다 잘 살기 위한 수단과 방법만 생각하지, 잘 사는 의미와 내용은 잊어서다. ‘네가 없는 나’ ‘나만 잘사는 길’ ‘가슴이 없는 머리만 큰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그런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무엇이 잘못인지를 생각하지 않는 나라는 더 큰 질병을 사서 앓는 셈이다.

 김수환 추기경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고백하신 적이 있다. 평생 이타적인 삶을 살아오신 성직자도 머리로 하는 사랑 말고, 가슴으로 하는 사랑의 실천에 목말라 했다. 머리로 하는 사랑은 입으로 하는 사랑이기 마련이고, 입으로 하는 사랑은 형식만의 사랑이기 십상이다. 나는 아프지 않아야 하고, 나는 가난하지 않아야 하며, 나는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 사랑은 허울을 쓴 겉치레사랑이다.

 타인의 아픔을 공유하는, 가난을 함께 나누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따뜻한 가슴의 사랑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길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65세에도 노인연금을 받는 사람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공직자가 많은 사람의 가슴에 찬 서리를 내리게 하고, ‘언론권력을 마구 휘둘러 소신 있는 공직자를 찍어내는 신문’이 최다 부수를 찍어내며, ‘만인에게 한 공약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지도자’가 지지율 60%를 웃도는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사회의 건강성과 개인의 행복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사치인 것만 같다.

 한가위 보름달을 맞이하기 좋은 명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픈 사람, 가난한 자리,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가슴마다 보름달은 언제나 따뜻하게 떠오를 것이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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