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시련은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이영옥
  • 승인 2013.09.11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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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지금까지 우리 현대정치 60년을 관통해온 변함없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서의 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였다. 물론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유교적 전통에서 비롯한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결합해서 독특한 정치문화를 형성했고, 이 같은 정치 환경을 통해 등장한 권위주의적 군부독재정권을 구축하기 위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의 참극을 거치며 고착된 “이념적 대결”, 민주화 투쟁의 와중에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 조장된 지역감정이라는 “정서적 대립”이 우리 정치를 관통해온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추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같은 기존의 정치적 가치와 모멘템을 대신해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 국민이 선택한 새로운 가치의 기준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이며 그 기준에 의거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변혁을 이루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당정치의 붕괴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그 밖의 모든 정치행태에 대한 냉소나 부정과 같은 이상 징후들 또한 이 같은 변화의 가장 분명한 반증에 다름 아니다.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이야 말로 향후 우리 정치를 견인할 최대의 화두가 될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나 인민 민주주의를 막론하고 대중의 의지를 모아 구체적으로 발현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선택했을 때부터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이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국민 다수의 심정적 동의를 얻고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대의민주주의란 국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권리와 의지를 선거를 통해 선출된 특정한 대리인에게 수탁하고 그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형태다. 문제는 이 대리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그것을 부여한 다수 국민의 이익을 도모하고 확충하는 데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정파나 집단,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 가장 우선적으로 행사해왔다는 사실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동안 이런 일들이 일반적이고 관행적으로 우리 사회의 용인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이 일반화 되고 고착된 데는 정치권력의 진정한 주인인 우리 모두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누가 선출 되어도 우리네 살림살이는 마찬가지라는 냉소와 무관심이 공직자들의 직권 남용과 권력 농단을 부추기고, 우리사회 전체에 부정부패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일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이제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이룩한 눈부신 경제발전, 집중과 선택을 통한 성장의 과실로부터 배어나오는 달콤한 과즙에 우리 모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사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초고속의 압축 성장은 한 편으로 우리 사회 내부에 부의 편중과 양극화라는 당연한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계층 간의 대립이라는 치유 불가능한 새로운 분열과 갈등구조를 낳았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가 견지해온 기존의 가치와 관행을 무시한 채 성장의 신화와 성과제일주의에 사로잡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 온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그 대부분의 책임이 있다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그런 공직자들을 선택해 온 우리 또한 그 책임의 일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동안 우리는 선출직 공직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첫째, 그가 얼마나 훌륭한 스팩을 쌓았는가? 둘째, 자기가 종사한 분야에서 얼마나 남다른 성취를 이루었는가? 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 선택의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들어 비교적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선출직 공직자를 선택하던 종래의 기준을 대신할 새로운 기준을 수립하려는 열망이 광범위하게 분출되고 있다. 기성세대가 선출직 공직자를 선택하던 기준에 적합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자신의 세속적 영달과 가족의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취득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기울이는 이기적인 삶을 영위해온 자들이라는 것이다. 무한경쟁을 통한 적자생존만을 허용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법과 제도를 통해 그것을 고착시켜온 그들에게 더 이상 정치권력을 수탁할 수 없다는 자각과 성찰이 애써 눈앞의 정치현실을 외면해오던 젊은 유권자들의 잠든 영혼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힘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의 변두리로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 또한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까운 이웃이며 동시대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들의 고통과 불행을 돌아보며 함께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정치권력을 위탁하려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최초의 사례가 바로 박 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이고. 2012년 이 땅을 휩쓴 안철수 현상이다. 이것이 바로 선출직 공직자를 선택하는 새로운 준거이며 정치적 환경이고 2013년의 시대정신이다.

이영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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