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의 날과 노인복지, 그리고 선진국
자살예방의 날과 노인복지, 그리고 선진국
  • 김형준 
  • 승인 2013.09.10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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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인가 ‘무엇’을 설명할 때 숫자로 표시하는 것이 이해가 빠른 세상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많은 숫자들이 있다. 세계 경제 규모 15위(2012년 IMF 자료), 경제 경쟁력은 100개국 중 3위(뉴스위크 2010년 조사), 정보통신 활용도는 전체 138개국 중 1위(세계경제포럼 2011년 조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0개국 중 학업성취도는 세계 2위(2009년) 등 이런 화려한 대한민국을 나타내는 많은 숫자들 중에 벌써 8년째 부동의 1등을 하는 수치가 있다. 바로 OECD 회원국 중 자살 사망률 1위이다. 대한민국은 2004년부터 작년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OECD 회원국 중 자살 사망률 1위(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를 기록하고 있는데 인구 31.7명(2011년)으로 2위인 헝가리의 23.4명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한다. 2011년을 기준으로 한 해에 1만 5,90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에 43.6명이, 매 33분마다 1명이 생을 자살로 스스로 마감했다. 1일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4명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숫자다. 한편, 우리 전북의 자살 사망률을 살펴보면 전국 자살사망률보다 높아, 인구 십만 당 36여명으로 강원, 충북, 충남에 이어 전국 4위이다. 시군별로 통계를 보면 전주가 가장 낮고 진안, 고창 순으로 주로 농어촌 지역이 자살사망률이 월등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최근에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아진 것은 바로 노인 자살률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 자살률은 65세 이상은 십만 명당 79.7명, 80세 이상은 116.9명에 달하며 연령층이 높을수록 자살률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경제적 빈곤, 우울증ㆍ암ㆍ치매 등의 질병, 가족 간 갈등, 외로움 등의 순으로 알려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로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3.5%의 3배가 넘는 45.1%에 달하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이는 65세 이상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빈곤층이라는 의미로 결국 가난하고 병들고 혼자 지내는 노인들이 자살의 고위험군이라 할 수 있다.

 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이날을 맞아 각 해당 기관마다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을 통해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예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9월 10일 전라북도와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가 주관으로 자살예방의 날 기념행사를 하고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문화행사를 펼치고 있다. 필자 역시 고창군 정신건강증진센터장을 맡게 되어 다양한 홍보활동과 문화행사를 실시하고 자살예방을 위한 강연활동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자살예방관련 사업을 하면서 현장에서는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홍보나 교육 등과 같은 캠페인성 사업도 중요한 자살예방사업 일부분이나 지나치게 자살의 문제를 개인의 정신건강이나 심리적 문제로만 보고 피상적인 접근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물며 이런 캠페인성 정신보건사업도 예산 부족과 인적, 물적 한계 때문에 사업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지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자살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살 증가의 원인인 노인의 빈곤, 건강, 주거 등 복지적 접근이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통계치가 말해주듯이 최근의 노인 자살률 증가는 경제적 어려움 등과 독거노인 같은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 연금, 노후 보장 같은 사회안전망 차원의 노인복지 전반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노인 빈곤율을 OECD 수준으로 낮추어야 노인 자살률도 세계 1위라는 오명을 벗고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나치게 개인적 자살에만 초점을 맞추는 접근을 넘어 총체적인 노인복지적 접근과 정책이 나오는 것이 자살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과 정치사회적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이례적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갈등과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가 가지는 사회적 모순과 갈등, 그리고 극복해야 할 새로운 도전을 보여 주는 상징적 숫자가 바로 자살 사망률이라 생각한다. 자살 사망률이 세계에서 낮은 나라로 분류되는 날 비로소 우리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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