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와 벗 삼는 옛 선인의 공부법
귀뚜라미와 벗 삼는 옛 선인의 공부법
  • 원용찬
  • 승인 2013.09.03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벌써 선선한 바람이 귓전을 스치더니 어느덧 개강으로 대학은 다시 붐빈다. 방학 동안에 몇 번밖에 들르지 못했던 블로그를 열어 보니 평생 지도교수 학생들의 편지들이 더 와있었다. 문득 지난 학기동안 연구실에서 고민도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얼굴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어떤 학생은 “교수님 말씀대로 좋아하는 미드(미국드라마)의 영어대본을 수십 번 듣고 외웠더니 이제 조금 귀가 뚫려서 영국의 교환대학 강의도 수월하게 듣고 있다”며 반갑게 안부도 전해 왔다. 우즈베키스탄의 봉사활동 이야기, 호주의 어학연수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 취업인턴 소식들도 우리들의 뜨거웠던 여름이 그을린 얼굴만큼이나 충만했음을 보여준다. 경제학 원론을 스무 번 반복해서 읽거나 아예 스마트 폰을 일주일동안 꺼놓고 집에 틀어 박혀서 고전과 장편 대하소설을 독파하라고 했던 주문을 소화한 학생들도 있었다.

공부하는 방법이 따로 있진 않겠지만 역시 미련하고 우직해야 한다. 대학원 시절에 지도교수의 일화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가끔 전해준다. 시골집 골방에 앉아서 공부하다가 밖으로 나오고 싶은 유혹을 없애기 위해 안에서 잠근 열쇠를 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했다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물을 많이 마시면 새벽에 요의(尿意)를 느껴 일찍 일어나게 된다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에 학생들은 신기하다는 듯 자기네들끼리 키득댄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안정복은 효경, 논어, 맹자, 그리고 육경을 가져다가 글자를 헤아려 보았다. 효경은 1,903자, 논어는 11,705자, 맹자는 34,885자, 예기는 99,010자, 주례는 45,806자, 그리고 춘추좌전이 196,845자였다. 보통 사람의 재주를 기준으로 만약 날마다 300자씩 외운다면 4년 반이 못 되어 마칠 수가 있고 조금 둔하다 생각되면 9년이면 끝낼 수 있다고 한다. 안정복의 독서법을 설명한 저자는 “공부는 단순무식하게 머리로 하지 말고 엉덩이로 해야 한다. 복잡하게 말고 단순하게 하라. 영리하게 말고 미련하게 하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친다.

역시 공부는 외우고 익히고 음미하고 이치를 터득하고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자의 어록대로 알아가고[知] 흥미를 느껴서 좋아하고[好] 거기서 즐거움[樂]을 찾는다면 공부도 인생의 여정이니 삶 자체가 기쁨으로 가득찰 것이다. 공부의 즐거움은 바로 문리(文理)가 서서히 트여가면서 인간 사회와 우주의 질서가 내 가슴에 들어와 앉게 되는데 있다. 게다가 우직함은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도전과 모험정신을 낳고 미련함은 자기 윤리와 타인에 대한 배려로 나타난다. 오늘날 대기업들이 외형적 스펙보다 인성 면접을 강화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니 옛 선인들의 독서법이 결코 다른 시공간의 전설만은 아니다.

그래도 선인들의 공부법은 맹모삼천지교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부터 맹모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망정 공동묘지 근처에서 어린 맹자는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삶은 죽음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죽음을 잊으면 삶마저 잊힌다. 죽음과 삶은 하나다.

맹자는 다시 시장 옆으로 이사를 간다. 맹자의 관심도 자연스레 죽고 사는 문제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 옮아가게 된다. 맹자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생존이란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했을 것이다. 맹자는 다른 사상가보다 유독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일반 백성들은 생활의 근거를 갖고 있어야[恒産] 마음이 변치 않고[恒心] 선한 길을 계속 갈 수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맹자는 서당 옆으로 세 번째로 이사하여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맹자가 공동묘지와 시장을 거치지 않았다면 단순히 입신출세의 공부만 하였을 것이고 오늘날 유가를 대표하는 사상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맹자는 공동묘지에서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 하는 삶과 죽음의 존재문제를 깊이 가슴에 넣었다. 배곯고 병들어 이승을 떠나는 죽음은 어린 가슴에 슬프고 깊이 각인되었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를 거쳐 마침내 맹자는 서당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거기에서 ‘의미 있게 사느냐 죽느냐’(To live or not to be) 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놓고 고민하였을 것이다. 맹자의 공부법대로 존재의 문제(철학)와 삶의 의미(인문학)가 밑바탕 돼야 먹고 사는 문제(경제)도 올바로 접근할 수 있다. 오늘날 경제학이 이득과 효율만을 다루는 우울한 학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한데서 나온다.

이제 깊어가는 가을이다. 귀뚜라미 / 은하수를 건너다 / 지구에 비상착륙한 /더듬이 달린 검은 별 하나 // 오늘도 / 어느 낯선 초가집 / 섬돌 틈에 숨어서 / 밤이 새도록 / 또르르 / 또르르 /구조신호를 타전한다(최용건 시 중에서).

하늘과 땅이 높아지고 소슬한 가을밤에 시인은 귀뚜라미를 통해 우주 전체와 수많은 별들을 자기 가슴 속에 내려놓는다. 깊은 밤에 책장을 잠시 덮어두고 귀뚜라미 소리 따라 우주별을 여행하고 마음을 키우는 일도 ‘큰 사람’이 되는 공부법이 아닐 수 없다.

원용찬 <전북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