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후백제 복권과 지역사 정립
아침햇살 후백제 복권과 지역사 정립
  •  이동희
  • 승인 2013.08.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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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전주시가 후백제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지역 연구자의 한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문화관광자원화가 우선적으로 추진되겠지만, 폄하된 후백제의 역사를 바로잡아 지역민들이 후백제의 역사적 의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비틀린 지역사의 한 부분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삼국의 역사는 승자인 왕건 위주로 쓰여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후삼국에 대한 역사 기록은 지나치게 편협하다. 왕건을 선인(善人), 견훤을 악인, 궁예를 추인으로 기록해 놓아, 허스트 3세는 드라마 각본 같다고 하였다. 난세에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기란 모호한 것인데 후삼국의 역사는 그렇게 쓰여 있다. 왕건, 견훤, 궁예 모두 난세의 영웅들이다.

『청장관전서』에 우리나라 3천년 역사에 두 번의 큰 비극이 있었다고 한다. 한번이 고구려가 망하면서 삼한의 책을 다 모아 놓은 평양의 서고가 불타버린 것이요, 또 한번은 후백제가 망하면서 삼국의 책을 다 모아 놓은 전주의 서고가 불타버린 것이라고 하였다. 악인 견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기록이다. 이 기사는 전주를 기록문화의 도시라고 할 때 그 시원에 있어서도 주목된다.

927년 후백제의 신라 경주 침공도 오해가 있다. 견훤이 경주를 침공해 경애왕을 몰아내고 경순왕을 세운 것은 그가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신라가 고려와 손을 잡고 있는 상황을 끊어놓고 친백제 세력을 세운 것이다. 경애왕은 박씨이고, 경순왕은 김씨왕족이다. 신라의 인심을 잃은 정책적 실패로 해석될 여지는 있어도 견훤이 악인이라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 이야기도 그렇다. 918년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왕건에게 투항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적에게 투항했겠냐는 것인데 사실 이는 명확치 않다. 역사기록에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라는 기사와 아자개가 왕건에 투항했다는 기사는 별도로 나온다. 즉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왕건에게 투항했다는 기사는 없다. 동명이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백제와 견훤에 대한 역사 왜곡으로 인해 전주가 후백제의 왕도였음에도 지역민들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고, 지역민들의 역사적 자긍심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전주가 왕도였다는 것은 알아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적지정이 추진되고 있는 견훤성이라는 명칭도 적절치 않다. 한 국가 왕의 이름을 따서 산성을 칭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견훤성으로 칭해지고 있는 것은 타자가 만들어 놓은 논리에 갇혀 후백제의 가치를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견훤성 명칭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역사와 관련해 후백제를 역사적으로 복권해야 하는 이유는 지역민의 자긍심 문제와 함께 후백제와 견훤에 대한 잘못된 역사기록과 해석이 이 지역 인심에 대한 오해의 배경으로 오랫동안 자리했다는 것이다. 전라도의 인심과 후백제 견훤을 연계시키는 논리이다.

전라도는 오랜 역사에 걸쳐 중앙정부의 견제를 받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역에 대한 차대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견제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산업화 이전의 전라도는 중앙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중앙정부는 이런 전라도를 끊임없이 경계해야 했다. 이것이 때로는 지역차별로까지 이어졌다.

중앙정부가 전라도를 견제한 가장 큰 명분은 풍수지리의 논리였다고 본다. 고려이후 풍수를 내세워 전라도사람들의 등용을 어렵게 하고 지역 인심을 좋지 않은 것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분이 전라도가 후백제 견훤의 잔재가 남아 인심이 나쁘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이런 기록이 나온다. 후백제 견훤의 잔재가 아직도 전라도에 남아 있어서 인심이 사납다는 것이다. 조선시대까지도 중앙의 통치자들 사이에서 이런 논의가 있다는 것은 후백제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지역을 바라보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후백제가 고려의 시각이 아닌 객관적 평가를 받아 역사상 제 위치를 찾게 된다면, 이로 인한 지역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전주시에서 추진하는 후백제 사업이 문화관광자원화만이 아니라 후백제를 역사적으로 복권하고 이를 통해 전주ㆍ전라도의 지역사와 지역정신 정립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오랜 역사에 걸쳐 승자가 되지 못함으로서 이 지역에 씌워진 멍에를 벗고 제 자리를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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