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의 사투,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요?”
“가난과의 사투,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요?”
  • 송민애 기자
  • 승인 2013.08.15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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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최고은을 막아라] 2.

 사물놀이 연주자인 A씨(서울)는 언제나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 아직은 한적한 거리. 새벽공기를 마시며 한참을 걸어 그가 도착한 곳은 연습실도 공연장도 아닌 도로변에 위치한 한 편의점이다. 이곳에서 수개월째 아르바이트 중인 A씨는 어제 팔고 남은 삼각김밥으로 대충 아침식사를 해결하고는 서둘러 몸을 움직인다.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A씨는 아침에 배송된 물품이 제대로 왔는지, 빠진 물품은 없는지, 수많은 물품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한다. 이후 물품들을 진열대에 차례로 진열한 후 남은 물품은 창고로 옮긴다. 그 사이에도 손님은 끊임없이 밀려오고, A씨는 바삐 몸을 움직여 물품정리와 동시에 제품계산도 해결한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낮 12시. 그러나 제대로 된 점심식사는 차마 꿈도 꾸지 못한다. 당장의 생활비도 부족한 A씨에게는 한 끼의 식사도 부담인 탓이다. 결국, 오늘도 A씨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간단해 보이지만 상당히 고된 일이다. 계산이며, 물품정리며, 청소 등을 혼자 해결하다 보면 앉아 있을 틈이 없다. 하지만, 마땅한 수입원이 없는 상황에서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일. 공연활동이 없는 요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A씨의 현실이다. 그나마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이윽고 오후 5시. 편의점 일을 마친 A씨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에 그가 향한 곳은 음식점과 술집들이 빼곡히 자리한 00동의 한 호프집. 편의점 일을 겨우 마쳤지만 그는 또다시 호프집에서 서빙 일을 하기 시작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만은 그동안의 빚과 현재의 생활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기를 쥐고 있어야 할 손에는 어느새 쟁반이 들려 있다.

그렇게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꼬박 일을 마친 A씨는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축 처진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파릇한 20대 청춘이 아닌, 짊어진 삶의 무게에 눌려 숨쉬기조차 버거운 중년의 모습과 흡사하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위 공연시즌이라는 게 있어요. 1년에 두 번 있는데, 바로 5~6월과 9~10월이 그 때죠. 이때 공연으로 1년을 먹고사는 거예요. 보통 두 시즌을 뛰면 많게는 800~900만 원을 벌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벌기가 쉽지 않죠. 서울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워낙 많을 뿐만 아니라, 요새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적정 비용도 못 받을 때가 허다하거든요. 특히 요즘에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공연예술무대도 줄어 1년에 500만 원 벌기도 힘들어요. 이것으로 1년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니 결국 아르바이트를 두개든, 세개든 병행할 수밖에 없죠.”

한 달에 채 50만 원의 수입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때문에 A씨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집세, 식비, 교통비 등의 생활비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 저야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살아가니 괜찮은 편이에요. 제 주변 동료들은 더 힘들게 사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술인들은 대출도 안 되고 신용카드도 못 만드니 늘어나는 빚을 해결하기 위해 급하게 사채를 빌려썼다가 빚 독촉전화에 시달리는 동료들도 있고요, 무대에서 공연하던 중 사고를 당해 더이상 공연을 할 수 없는데도 산재보험 적용이 안 돼 생활고에 시달리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나마 저는 몸이 멀쩡하니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죠.”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A씨의 말이 계속해 귓가를 맴돈다.

“그래서인지 주변 동료들 중에 아예 공연을 그만두는 친구가 한 둘이 아니에요. 비싼 등록금을 들여 대학을 졸업하고, 수많은 레슨비를 쏟아 부었지만, 결국 먹고 살기 힘드니 이 바닥을 떠나는 거죠. 당장 굶어 죽게 생겼으니까요. 예술인은 배가 고파야 한다지만, 굶어 죽을 상황에서까지 예술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야 아직은 무대가 좋아 버티고는 있지만, 정말이지 언제까지 이 생활을 버텨낼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가난이라는 검은 그림자는 소리 없이 야금야금 젊은 청춘의 꿈과 희망을 갉아 먹고 있다. 이는 비단 A씨 만의 얘기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실시한 ‘2012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따른 월평균 고정수입이 100만 원 이하인 문화예술인은 66.5%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뿐만 아니라 ‘월평균 고정수입이 아예 없다’고 응답한 문화예술인도 26%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상당수 예술인들이 지독한 생활고 속에서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불태우며 창작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지금의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현실이다.

송민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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