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인의 분노
전북인의 분노
  • 유균
  • 승인 2013.08.12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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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하십니까? 분노 하세요.

전 세계적으로 3천5백만 부나 팔린 ‘분노하라’ 에서의 스테판 에셀이 내리꽂는 화두가 바로 이 분노다!!

그는 지난 2월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그가 쓴 ‘분노의 화살’ 은 여전히 과녁을 향해 날고 있다.

전북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속상해 하고 억울해 하는 사람이 많은 전북에서 이 분노의 화살은 더 세차게 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이 호남이라는 지역적 멍에를 타고난 불운처럼 에셀도 젊은 날 이미 힘들고 어려운 길로 나섰다. 1917년 독일에서 출생한 그는 3살 때 부모들을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리고는 2차 대전을 맞으며 레지스탕스 투사의 길로 들어섰다가 1944년 체포되어 부헨발트 수용소를 시작으로 세군데 형무소를 전전했지만 기적같이 목숨을 부지 했다. 그가 이후부터 인권과 평화운동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셀은 억울한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은 어김없이 찾았다. 힘들어 하는 빈민층을 방문하여 이들을 부등 켜 안고 울었다. 그는 끊임없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며 대중들에게 분노의 철학을 강조했다.

“위 만 바라보지 마세요! 특히 맨바닥을 들여다보세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옳다고 생각되거든 함께 행동하세요!”

그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립은 비겁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참여하며 행동하여 끝없이 세상을 바꾸자고 주문했다.

전북의 지난세월을 보면 에셀 만큼이나 불운한 과거를 지고 왔다. 군사정권이후 전북은 소외와 낙후의 상징이었다. 경부 축 개발의 당위 논리에다가 지역감정을 활용코자 하는 저급한 정치 책략가들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지방자치가 시작 된지 벌써 23년째다. 사실은 이때부터 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남을 앞서가는 창조적 선두기반 구축에 혼신을 해야 했다. 한데도 우리 스스로가 봐도 남에게 선뜻 내 놓을만한 기반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여기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어내는 일 조차 시원하게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LH 본사의 경남 이전과 새만금 예산의 형편없는 배정 등은 우리에게 아픈 상처가 되었다. 문제는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기를 뚫고 솟구칠 대안이 별로 없다는데 있다.

우리 전북인 들은 외부 사람들로부터 점잖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칭찬 해 주는 말 같기도 하고 제 밥그릇을 잘못 챙긴다는 비아 냥 인 것 같기도 하다. 제 밥그릇을 잘 못 챙긴 다 라는 후자의 평가는 사실 우리 전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동학혁명을 보라!! 서슬이 퍼런 왕권 시대에 민초들의 도전은 누구도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한데도 우리 전북의 선조들은 수탈하는 권력에 맞서 죽음을 불사했다.

적어도 우리 전북인 에게는 이런 우리 선조들의 정의로운 용기와 자신을 지키는 신념의 DNA 가 전수 되어 흐르고 있다.

여기서 스테판 에셀의 말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 전북인 들이여 왜 이렇게 침묵하는가? 중앙정부의 노골적이 홀대가 아무렇지도 않는가? 전북이 이대로 주저 않아도 괜찮단 말인가?”

분노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도 분노하지 않으면 그것은 민주 시민으로써 책임을 저버리는 자세다. 자기 지자체, 자기고향이 수렁에 빠진다는 일은 곧 자기가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것 이 아닌가?

전북인 이라면 지금은 분노하며 일어설 때다. 이제는 일등 지자체를 끌고 갈 일등 일꾼을 뽑는데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또 전북을 대표해 중앙정치권을 휘저을 인물을 어떻게 하던지 키워내야 한다.

스테판 에셀은 충고 한다.

전북인 이여 분노하라!!! “분노하고, 공감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만이 바꿔진 좋은 세상을 향유 할 수 있다.”

유균 / 전 방송진흥원장 / 현 극동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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