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현충시설을 찾아서10] - 3.1독립선언 민족대표 박준승선생 유허비
[우리고장 현충시설을 찾아서10] - 3.1독립선언 민족대표 박준승선생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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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0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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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즈로 유명한 전북 임실에 가면 주치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의 회관 옆에 굳건히 세워져 있는 커다란 비가 있습니다.  

 바로 3.1운동으로 체포되어 일본인 판사 앞에서 “금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답변함으로써 불요불굴의 독립정신을 드러낸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의 한 분인 박준승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유허비입니다. 

 박준승 선생은 1985년 전북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에서 출생하여 20대에 이르러 현실 문제에 눈뜨기 시작하였습니다. 개항 이후 물밀듯이 몰려드는 외세와 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위정자들의 모습과 도탄에 빠진 민생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 급급하였던 당시 양반 지배층을 보면서 선생은 점차 우국청년으로 성장하여 갔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반침략, 반봉건의 동학사상에 공감, 1891년 동학에 입교하게 됩니다.  

 이후 선생은 1908년 천도교 수접주, 1912년 전남 장성군 천도교 대교구장 겸 전라도 순유 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1916년 천도교 전라도 도사에 임명되어 민족의식과 배일사상을 전파해 갔습니다. 

 그리고 1919년 2월 경 손병희 선생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33인 대열에 참여하게 되어 같은 해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대표 등과 함께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뒤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감이후에도 선생은 천도교의 교육자로 활동, 법정에서 밝힌 대로 재차 독립운동의 기회를 모색하다가 1927년 3월 24일 염원하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고, 국가보훈처에서는 2003년 9월 15일 박준승선생 유허비를 현충시설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 위치 : 전북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주치마을 마을회관 옆

 〈전주보훈지청 제공, 문의 ☏063-23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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