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복지법의 허와 실
예술인복지법의 허와 실
  • 송민애 기자
  • 승인 2013.07.31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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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최고은을 막아라] 1.

 1. 예술인복지법 명과 암…제2의 최고은 막아야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가수 이진원씨(2010년 사망)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2011년 사망) 등이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린 끝에 사망한 뒤 예술인들의 열악한 창작 현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는 곧 예술인복지법 제정에 불을 지폈고, 정부는 지난해 11월 ‘예술인복지법’을 시행함과 동시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출범시키는 등 예술인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에 나섰다. 그렇게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된 지 9개월째에 접어든 지금, 과연 예술인들의 복지환경은 나아졌을까. 이에 대해 정작 예술인들 중 상당수는 그 효과에 대해 의문이라고 말한다.

 예향(藝鄕)인 전북에는 문화예술인이 많다. 이 가운데 홀로서기가 어려운 문화예술인이 상당수에 달한다. 이에 본보에서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기획취재팀(팀장 한성천 문화교육부장, 김미진·송민애 기자)과 ▲자문단(이정덕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윤찬영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유대수 문화연구창 대표)을 구성, 국내·외 예술인 복지정책을 면밀히 비교·분석해 예술인 복지환경의 개선방안을 12회에 걸쳐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주> 

 <게재순서> 

     1회 : 예술인복지법 명과 암
  2회 : 배고픈 직업문화예술인 사례 1-전북
  3회 : 배고픈 직업문화예술인 사례 2-서울 및 경기
  4회 : 예술인복지법 운영 현황-한국예술인복지재단
  5회 : 전북 예술인복지 실태-전북
  6회 : 독일, 예술가기본권 보장 1
  7회 : 독일, 예술가기본권 보장 2
  8회 : 프랑스, 실업수당 예술인 창작지원 1
  9회 : 프랑스, 실업수당 예술인 창작지원 2
  10회 : 사회적 안정망 정착 필요
  11회 : 전문가의 제언 1
  12회 : 전문가의 제언 2
 

 # 가난과 무관심, 젊은 청춘 죽음으로 내몰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그는 2003년에 데뷔해 정규앨범 3장과 미니앨범 3장을 발매한 인디 뮤지션이다. 비록 언더 그라운드를 주무대로 활동했지만 ‘절룩거리네’, ‘스끼다시 내 인생’, ‘나의 노래’ 등과 같은 히트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그는 좀처럼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곡을 만들고, 음반을 내고, 클럽에서 노래를 했지만 그의 연수입은 1,00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온 몸으로 느껴야만 했던 그는 결국 2010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단 서른일곱.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그녀는 한때 실력과 재능을 겸비한 인재로 촉망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실력과 재능은 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대학 졸업 이후 그가 완성한 시나리오들이 더 이상 영화화되지 못한 것. 그리고 2011년, 그녀는 설 연휴를 앞둔 어느 겨울날 반지하 월셋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생전 췌장염과 갑상선 항진증을 앓아온 그녀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여러 날 굶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 나이 역시 서른둘이었다.

 두 젊은 예술청춘의 죽음에는 ‘가난과 무관심’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가난과 무관심이 결국 젊은 예술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두 예술인의 죽음을 계기로 문화예술계는 예술인에 대한 복지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같은 죽음을 비단 이진원과 최고은이라는 두 예술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을 불태우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2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3명 중 2명은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이 100만 원 이하로 조사됐다. 더욱이 예술인의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률은 각각 30.5%, 27.9%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타급 문화예술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화예술인들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에다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예술인복지법, 뜻깊은 출발

 두 젊은 예술인의 죽음은 예술인복지법 제정에 불을 지폈다. 국내 예술인들은 사회적 지위 보장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펼쳤고, 마침내 2011년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됐다. 이어 2012년에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됐고,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출범했다.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의 공공적 지위를 인정하고 예술인의 복지를 위한 법적 토대를 갖췄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물론 여전히 예술인복지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는 높지만, 예술인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첫 안전망이 구축됐다는 점에서 뜻깊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예술인복지법의 주요내용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산업재해보험’적용이다.

 예술인복지법 시행으로 예술인들도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근무 과정에서 입은 피해를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무계약·불공정 계약으로 예술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표준계약서’ 양식 개발 및 보급이 진행되고 있으며, 예술인의 경력관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예술인의 활동 실적 및 경력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도 구축된다. 이는 모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맡아 예술창작활동보호와 생산적 예술인 복지체계 구축에 힘 쏟고 있다.

 그러나,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예술인들의 반응은 정작 미지근하다. 오히려 ‘있으나 마나한 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예술인들은 그 원인으로 가장 먼저 ‘실질적인 혜택의 부족’을 꼽는다. 즉, 산재보험 외에는 실질적인 혜택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예술인복지법은 발의 법안 내용 가운데 고용보험 및 예술인복지기금 등의 핵심조항이 삭제된 채 법이 제정됨으로써, 예술인들을 위한 실질적 지원에 한계를 보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 혜택'이라 할 수 있는 '산업재해보험'의 경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재단을 통해 예술인 산재보험에 가입한 후 3개월 이상 보험을 유지한 예술인가입자에 한해 최저임금 수준인 1등급(월 보수액 1,166,400원) 기준 납입보험료의 30%(월 보험료 11,660원인 경우 월 3,500원/연 42,000원)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당장 생계가 어려운 예술인들에게는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 많은 예술인들이 산업재해보험 가입을 꺼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예술인 활동증명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산재보험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 절차상 불만요소 풀어나가야

 까다로운 예술인 활동증명 절차와 불확실한 예술인 범위도 불만의 요소로 꼽힌다. 예술인복지법에 명시된 예술인에는 문학·미술·무용계 순수 예술인들을 비롯해 방송연기자, 연출·음향, 스턴트맨 등 대중문화예술인들이 포함되나, 최근 작품 활동 경력 또는 실적 등을 예술인복지재단에 제출한 뒤 심의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예술인으로 증명을 받아야 수혜 대상자가 될 수 있어 상당한 불편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시행령에 따르면 예술 활동 실적, 예술 활동 소득(연간 120만 원 이상), 저작권 등록 실적 등 4개 기준 가운데 하나만 충족돼도 예술인으로 등재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인’과 예술인인 척 하는 ‘예술인’을 어떻게 분간하느냐는 것. 또한, 공연 출연이나 최소 1회 이상의 연출을 해야만 예술인임을 증명할 수 있게 돼 있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현장 스탭들은 수혜 대상에서 빠졌다.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현재 정책당국과 정치권에서는 예술인 복지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예술인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2017년까지 3만 명의 산재보험 가입 지원과 예술인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또 정치권에서도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향후 예술인복지법이 ‘진정’ 예술인의 복지를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거듭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송민애 기자
 
 ◆자문위원 : 이정덕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윤찬영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유대수 문화연구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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