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미스터 고' 정성진 VFX 감독 "시각효과는 신세계"
[인터뷰]'미스터 고' 정성진 VFX 감독 "시각효과는 신세계"
  • /노컷뉴스
  • 승인 2013.07.3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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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감독과 영화제작 틀 바꿀 덱스터 스튜디오 설립…"세계 영화팬 홀릴 것"
 

"영화 개봉 전 중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어요. 그들의 공통적인 반응이 '영화 속 3D 고릴라 정말 너희가 만든 것 맞냐?' '외국에서 누가 도와준 것 아니냐?'는 식이었죠. 있는 그대로 답했어요. '우리가 다 만들었다' '미국에는 한 번도 안 갔다'고 말이죠."
 
영화 '미스터 고'에 나오는 아시아 첫 3D 입체 디지털 캐릭터를 탄생시킨 정성진(41) 특수효과 총괄 감독의 말이다.
 
그가 전한 중국 기자들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스터 고의 시각효과(VFX)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스터 고는 17일 한국 개봉에 이어 이튿날 중국에서도 선을 보였는데 28일 현재 1억 위안, 우리 돈으로 181억여 원의 흥행수익을 내고 있다. 앞서 개봉 4일 만에 7769만 위안(약 141억 원)의 흥행수익을 내 개봉 첫 주 중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개봉 첫날에만 2000만 위안(약 36억 원)을 벌어들인 이 영화는 총 수익 1400만 위안(약 25억 원)을 기록한 '괴물', 1200만 위안(약 21억 원)의 '아저씨' 등의 기록을 하루 만에 제쳤다.
 
최근 들어 3D 영화 수요가 급증하는 중국 영화 시장에서 미스터 고가 흥행 몰이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곧 한국의 VFX 기술력이 인정받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세계 영화계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는 VFX 기술의 발전은 무엇을 의미할까?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성진 감독에게 우리나라 VFX 기술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들었다.
 
-VFX란 무엇인가.
 
"우리 말로 옮기면 시각효과로 'Visual Effect'의 발음에서 따온 말이다. 고전 SF영화 '스타워즈' 속 광선검이나 우주선이 날아가는 장면도 VFX다. 다만 지금처럼 컴퓨터 그래픽(CG)을 이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CG가 사용되기 전에는 촬영한 필름 위에 그림을 그려 넣고 그것을 다른 필름에 다시 투사하는 광학합성 방식을 썼다. 이 둘을 잘 버무려서 영화 속 VFX가 잘 나오도록 총괄하는 것이 시각효과 감독의 역할이다. 이제 VFX는 거의 CG로 구현된다고 보면 된다."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요즘에는 디자인과에서도 CG로 디자인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만, 내가 다니던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종이에다 펜으로 그렸다.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와 특수효과가 들어간 영화를 좋아했는데 '디자인도 CG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 혼자 컴퓨터를 세팅해서 입체 디자인을 했다. 교수들에게 보여 주면 점수는 안 좋았지만 말이다. (웃음) 당시 '쥬라기 공원' '토이 스토리' 등 CG를 활용한 영화가 뜰 때였는데 'CG로 영화를 재밌게 바꿔 보자'는 꿈을 갖고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영화계와의 인연은.

"영화 '구미호(1994년)'의 시각효과를 담당하신 박관우 감독 밑에서 1996년부터 일을 시작했다. 2000년 EON디지털필름을 설립하고 2010년까지 '무사' '올드보이' '괴물' '신기전' 등 74편의 영화에서 시각효과를 담당했다. 당시 우리 회사를 비롯해 '장화홍련' '중천' '포비든 킹덤' 등의 시각효과를 만든 DTI, '태풍' '마이웨이'의 인사이트 비주얼까지 3곳이 우리나라 VFX 시장을 삼분하고 있었다. 이들 회사가 2010년 통합돼 디지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데, 이곳에서 2년 정도 이사로 있다가 지난해 2월 김용화 감독과 덱스터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현장에서 VFX의 입지는 어떤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잘하는 사람도 거의 전무한데다 VFX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었다. 현장에 가면 촬영감독, 미술 감독 사이에 낄 수도 없었다. 그런데 CG로 화면에서 전봇대 등을 지우고 하니까 신기해 하더라. 그런 식으로 필요한 분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정재 주연의 '박대 박'(1997년)을 보면 사람이 눈에 야구공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도 CG로 만든 덕에 더욱 코믹하게 찍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몇몇 장면에만 시도하던 것이 지금은 한국 영화 한 편에서 4분의 1은 CG를 활용한 시각효과로 채워진다. 할리우드의 경우 제작비 2500억 원짜리 영화에서 VFX에 쓰이는 돈이 1000억 원이다. 이 분야 프로듀서가 따로 있을 만큼 대단한 힘이 몰린다.

 

-미스터 고의 주요 배경인 중국에서는 촬영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극중 중국의 서커스단 신도 우리나라에서 찍었다. 허허벌판을 나타내기 위해 CG로 커다란 산들을 들어내고 평탄화 작업을 했다. 야구장도 잠실야구장으로 설정돼 있지만 촬영은 춘천야구장에서 했다. 이곳에 블루 스크린을 씌우고 촬영한 뒤 나중에 잠실야구장처럼 고치고 관중들도 집어넣었다. 배우, 스텝, 장비를 싣고 직접 그 장소로 가서 촬영하는 비용과 CG를 활용하는 것을 비교해 봤을 때 후자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흥행 제조기 김용화 감독과 여러 작품을 함께 했는데.
 
"김 감독이 '미녀는 괴로워'(2006년)의 시각효과 감독을 찾아다닐 때 인연이 됐다. 호흡이 잘 맞아 '국가대표'(2009년)도 함께 했고, 이번에 미스터 고를 하면서 회사까지 만들었다. 그는 VFX를 활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미녀는 괴로워에서는 뚱뚱한 김아중이 어설프게 보이면 안 된다는 것, 국가대표에서는 스키점프 장면이 멋지게 나와야 한다는 것, 미스터 고에서는 고릴라 하나만큼은 제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모두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국가대표에서도 1000여 컷의 CG가 후반 30분간 펼쳐지는 스키점프 경기 장면에 집중되는데, 배우들만 빼고 모두 VFX라고 보면 된다. 배우들이 날아오르는 장면은 실제 선수들의 점프 장면을 찍고 배우들의 어깨서부터 얼굴까지를 CG로 입힌 것이다."
 
-덱스터 스튜디오는 어떻게 설립됐나.

"VFX는 산업이다. 영화 촬영팀이 10여 명인데 반해 시각효과팀은 30, 40명에서 많게는 200, 300명이 붙는다. 할리우드는 많게는 5000명이 참여하니 말 다했지. 김용화 감독은 영화를 연출하는 데 있어 VFX가 훌률한 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와 함께라면 시너지를 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현재 산업으로서 VFX는 열악하다는 말인가.

"제작자는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낮은 비용을 원한다. 가뜩이나 작은 시장에서 300, 400명이 해도 손이 모자란 일을 30, 40명이 한다. 그래서 하청업체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앞서 세 곳 시각효과 업체의 통합도 할리우드 물량을 가져와야 한다는 목표에서였다. 미국은 쉽지 않은 시장이었다. VFX만 갖고 지배력을 갖거나 이익을 내기는 힘들다. 영화라는 콘텐츠의 힘을 등에 업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한정된 부속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롤모델이 있다면.

"스타워즈 시리즈의 조지 루카스는 이 분야 선각자다. 그가 설립한 ILM은 '쥬라기공원' '트랜스포머' 등 최고의 VFX를 구현함으로써 다른 감독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피터 잭슨 감독이 사장으로 있는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는 세계 최고다. 인구 1000만 명이 안 되는 뉴질랜드는 자국 영화를 1년에 5편도 못 만든다. 주요 산업도 낙농, 관광이다. 그런 나라가 아바타의 시각효과를 실현했다.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찍으면서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진행하자고 제안했고, 배우와 스텝들을 불러들임으로써 고용까지 창출했다. 웨타 스튜디오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만들면서 직원이 3000명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하면.

"한국에서도 반지의 제왕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영화 제작자들이 최고 수준의 VFX 기술력을 가진 한국에 와서 영화를 만들게끔 하겠다는 의지다. 요새는 블루 스크린을 걸어 두고 찍기 때문에 촬영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후반 작업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도 많다. 그런 지점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김용화 감독과 함께 영화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려면 디지털 스튜디오가 꼭 필요했고 그것이 덱스터 스튜디오다.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옆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중국 시장이 있지 않나."
 
-3D 입체 디지털 캐릭터인 고릴라 링링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크리쳐(creature) 기술이다. 사람도 크리쳐가 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생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처음에 각 뼈대를 심어서 특정 동물의 골격이 완성되면 여기에 피부조직을 입힌다. 모든 동물은 미세하게 털을 갖고 있다. 사람도 거미도 털을 갖고 있다. 이 털을 만드는 기술은 잔디 같은 결을 가진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다. 결국 고릴라 링링은 사람도, 호랑이도, 사자도, 원숭이도 될 수 있다. 링링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나타낼 기술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현재는 워터 시뮬레이션을 연구하고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 봤던 물보라를 만드는 기술이다."
 
-링링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텐데. 

"처음에는 링링이 아들 같았는데 이제는 아빠로 보인다. 할리우드의 크리쳐에 없는 링링의 특징을 감히 꼽는다면 감정 표현이다. 링링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표정, 특히 눈빛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눈빛에 동화돼 슬픔을 느꼈다는 관객도 봤다. 감정을 가진 고릴라 링링에는 수많은 이들의 열망과 꿈이 담겨 있다. 링링이 우리의 슈퍼스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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