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배움
인권과 배움
  • 이동희
  • 승인 2013.07.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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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하도 많지만, 그 중의 하나는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갈등 현상이 아닌가 한다. 아니,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도록 만들었다는 조례가 왜 반대에 부딪히는지 이해하기 곤란하다. 그것도 한 나라 교육의 총본산이랄 수 있는 교육부가 지방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의 재의요구를 듣지 않는다고 해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가는 현상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공교육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더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부 기독교계에서조차 학생인권조례에 시비를 걸고 이를 철회하라고 한다니 참으로 암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전주기독교연합회에서는 “초중고 학생을 동성애자로 만들고, 어린 학생들의 임신ㆍ출산을 조장하는 독소조항 등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런들 학생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조례에 기독교계에서 주장하는 식의 무분별한 항목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 의식-무의식적으로 만연해 있는 양성 간의 차별 요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양하게 분출하는 시대의 요구와 문화현상을 슬기롭게 교육자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어느 시대나 미룰 수 없는 교육과제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을 세계화 시대에도 지켜내야 할 미덕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학생 체벌금지 조항을 들어 교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체벌을 금지함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권리가 침해된다니 참으로 이상한 논리다. 체벌하지 않고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주장이나, 가르치는 과정에서 ‘사랑의 매’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주장은 흑백논리와는 다른 싸움이 되어야 한다.

이미 폭력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현상을 무시하고 학교에서도 일정한 정도의 체벌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존엄한 생명체인 인간을 체벌로 가르치는 것이 과연 최선의 교육방법인지는 토의-토론하고, 연구-탐구해야 할 교육 과제이긴 하다.

그러나 교수학습 중에 교사에 의해 가해진 체벌을 학부모는 ‘(폭력적)벌’이라며 교실까지 찾아와 항의하고, 교사는 ‘(사랑의)매’라며 억울해하는 교육 현장의 현실을 두고만 보아야 하겠는가? 학부모의 자식사랑이 항의에서 끝나지 않고 교사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인권조례에서 체벌을 허용한다고 해서 학부모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으며, 교사의 가르치는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을까?

필자의 손녀가 올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대부분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입학 전까지만 해도 사물을 보는 눈길이 어찌나 여리던지 과연 저리 여린 심성으로 학교나 제대로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길을 걷다가 개미만 보아도 질겁하며 할아비 품에 달려들곤 하였으며, 문설주에 거미라도 발견하면 동네방네 떠나가라고 비명을 지르며 두려워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꼬맹이가 겨우 학교 서너 달 다녔다고 사물을 보는 눈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놀라웠다. 길거리 뙤약볕에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발견하고는 “할아버지, 지렁이는 예쁘지요? 참 어여쁜 벌레지요?” 하는 것이 아닌가! 예전 같으면 지렁이를 발견하자마자 십리는 달아나거나, 할아버지 품으로 달려들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을 아이가 학교에 서너 달 다녔다고 이렇게 사물을 보는 안목이 달라질 수 있다니!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다양한 생물이 생태사슬에 얽매어 있으므로 우리도 살아갈 수 있음을, 그 생태계의 어느 한 축이라도 무너지면 우리의 생명도 있을 수 없음을, 나의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임을 배웠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으로, 교과서의 설명으로, 영상이 비춰주는 그림으로 보고 듣고 배웠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선언은 그것을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문이건, 권리장전이건, 인내천(人乃天)이건, 학생인권조례건 권리를 지키려는 선언의 내용은 ‘생명존중’ 말고 더하고 뺄 것이 없다. 생명을 보호하려는 권리를 ‘체벌 허용’이라는 반생명적 조례로 지켜낼 수 있으며, ‘성적 차별’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방법으로 지켜낼 수 있겠는가? 모든 생명은, 벌레까지도 ‘참 어여쁘다’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눈길로만 보아도 해답은 나온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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