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례길’을 말한다
‘아름다운 순례길’을 말한다
  • 최낙관 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 승인 2013.07.1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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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 치유를 의미하는 ‘힐링’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어쩌면 ‘힐링’은 한편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찾게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경쟁압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고독한 현대인의 근원적인 속성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속도와의 전쟁’을 뒤로하고 달팽이처럼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우리 전라북도에는 바로 그 ‘느림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례길’이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탄생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파를 넘어 모인 여러 종교인들이 자치단체와 힘을 합쳐 우리 전북지역에 ‘아름다운 순례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총 9개 코스 240km에 이르는 순례길은 전주와 완주, 익산, 김제에 걸쳐 있는 소통의 길이자 종교 간 경계를 넘어 상생을 추구하는 진정 ‘아름다운’ 길이다. 아마도 앞으로는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산티아고 순례길, 즉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와 견줄만한 우리의 자산임이 틀림없다.

 필자는 지난 7월 6일부터 12일까지 오랜 동무인 전라북도시각장애인도서관 송경태 관장과 ‘아름다운 순례길’에 올랐다. 시각장애인인 송경태 관장의 눈이 되어 배낭에 맨 생명줄에 의지한 채 240km의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했다. 총 9개 코스를 7일간의 여정으로 마무리해야 했기에 많게는 하루에 40km 이상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우리의 동행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거리만이 아니었다. 날씨와 지형도 문제였다. 장마철이라 때로는 폭우를 뚫고 위험이 가득한 산을 넘어 걸어야 했고 태양이 작열하는 낮에는 강둑길에서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지난한 여정이 반복되었다. 사실 ‘아름다운 순례길’은 종교는 물론 지역적 경계를 넘어 소통과 상생을 추구하는 길이지만, 우리의 여정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했던 시간은 비움과 채움을 경험하게 했던 힐링의 여정이었다.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물론 작게는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떠남이었지만, 크게는 유럽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이제는 평화와 공존이라는 대명제를 위한 우리의 ‘아름다운 순례길’이 상징을 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름다운 순례, 홀로 또 함께”라는 주제로 ‘2013 세계순례대회’가 9월 28일(토)에서 10월 5일(토)까지 순례길 전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세계 최고의 순례길을 위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개최를 위해 4대 종단 종교지도자와 관계자 그리고 전문가로 구성된 세계순례대회조직위원회의 법인화를 추진하는 등 순례대회의 세계화와 명소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숙박시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우리 지역의 ‘아름다운 순례길’에는 휴식공간은 물론 숙박시설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가 너무 열악해 인근 다른 지역까지 숙소를 찾아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구나 순례길 구간별 중간에서 머물러야 하는 경우 숙박과 휴식은 거의 불가능했다. 필자가 과거 독일 유학시절 자동차로 산티아고 순례길 일부를 가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알베르게’(Albergue)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숙소가 약 5~10km마다 위치하고 있어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도 있고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많은 순례자와 도보 여행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우리와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숙박 및 여가시설 못지않게 많은 아쉬움을 자아내게 했던 또 다른 문제는 우리의 자랑거리인 ‘아름다운 순례길’에 대한 홍보와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제 시작단계라는 점을 생각한다 해도 도민은 물론 인근 지역주민들조차도 순례길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거의 무지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계절적인 요인 때문일까. 필자는 7일간의 순례길 여정에서 단 1명의 순례자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가는 그 길이 순례길임을 알려주는 달팽이 이정표를 따라 나아가는 길은 잡초로 뒤덮여 적막감마저 돌고 있었다.

 2013년 세계순례대회가 이제 2달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전라북도의 자랑 ‘아름다운 순례길’이 인위적으로 잘 손질된 길일 필요는 없지만, 그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누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느끼는 성찰의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작은 변화를 위해 도민들이 먼저 앞장서 그 길을 ‘홀로 또 함께’ 걸어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져오는 변화나 더 좋은 시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결국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찾는 변화다”라고 역설한 버락 오바마의 고언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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