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3대 시장, 전주장
조선의 3대 시장, 전주장
  • 이동희
  • 승인 2013.06.2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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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호구를 조사한 대표적인 문헌으로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가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전주부 호수(戶數)는 총 20,947호로 한양, 평양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이고, 인구는 72,505명으로 한양, 평양, 의주, 충주에 이어 5번째이다. 조선시대 전주를 왜 3대 도시라고 하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통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전주역사박물관 11주년을 기념해 ‘전주의 시장과 경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전주 시장 사진 특별전’을 마련하였다. 시장 사진 전시회는 7월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학술대회와 특별전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전주가 시장에 있어서도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의 3대 장시(場市)로 불렸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3대 시장을 논하면서 한양이 제외된 것은 한양의 경우 지방과 달리 시전(市廛) 등 점포가 있는 상설시장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지방의 상업공간은 점포가 있는 상설시장이 아니라 야외에 좌판을 깔고 며칠에 한 번씩 열리는 장(場)이 중심이었다.

전주가 3대 시장의 하나였다는 것은 물산의 집결지요 유통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전주는 조선제일의 곡창지대 전라도의 풍부한 물산과, 전라감영이 소재한 정치 문화적 중심지요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로서 조선시대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도시로 자리하였던 것이다.

전주를 양반도시,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하면서 상업도시라고도 칭했던 것은 이처럼 물산이 넘쳐나는 전주의 특질을 담은 것이다. 문화와 상업, 서로 배치되는 것 같은 두 가지가 전주에서 같이 자랐던 것이다. 이는 한양이 정치의 중심지로서 문화도시이자 상업도시인 성격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양이 조선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였다면, 전라도에서는 중심으로서 그 기능을 전주에서 담당하였다. 나아가 전주는 전라도만이 아니라 한양을 제외한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이기도 하였다. 10대 도시에서도 이미 멀어져 버린 현재의 전주를 놓고 볼 때 의아하겠지만, 지금부터 100여년전만 해도 전주는 남북한을 다 합친 전조선의 대표적 도시였다.

전주는 장시 개설의 시원에 있어서도 주목된다. 장시는 1470년(성종 원년) 전라도에서 처음 개설되었다. 시장이 열렸던 구체적인 곳으로는 나주와 무안 등이 확인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3년조에는 전라도 모든 고을에서 매월 두 차례 상인들이 모여 장문(場門)이라 일컫고 상업활동을 한다고 되어 있다.

비록 장시 개설시원과 관련해 전주라는 지명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런 정황과 기록들, 그리고 전주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장시가 처음 개설될 때 전주에도 장이 열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주는 장시가 처음 개설된 곳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주 남밖장은 전라도에서 가장 컸고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장시였다. 전주부성 4대문 밖에 모두 장이 섰는데 남문밖장, 서문밖장, 북문밖장, 동문밖장이 그것이다. 남문장과 서문장이 큰 장이었고, 북문장과 동문장은 작은 장이었다. 남문장은 지금과 달리 전주교(싸전다리) 동편 전주교대 앞쪽 천변에서 열렸던 것으로 보이고, 서문장은 완산다리 북쪽 너머까지 장터였다.

남문장은 2일, 북문장은 4일, 서문장은 7일, 동문장은 9일에 열렸다. 북문과 동문장은 남문장과 서문장 사이사이에 열린 작은 장이라서 그런지, 남문장과 서문장은 대시(大市)라고 하는 것에 반해 북문장과 동문장은 간시(間市)라고 하였다. 전주부성 주변에서 거의 하루건너 장이 열린 셈이다.

전주부성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도 소양장, 봉동장, 삼례장 등 7개 정도의 장이 열렸다. 전주부성밖장 4곳과 합하면 전주에 대략 11개의 장이 열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주일원에서 거의 매일 장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또 전주성내에는 크지는 않았겠지만 주석방거리, 쇠전거리, 지방거리, 선자방거리, 은방골목 등 상설 점포들이 있었다. 전주 상권이 얼마나 번성했을지 짐작이 간다.

조선시대 전주는 문화만 앞서갔던 것이 아니라 경제도 탄탄하였다. 백제로부터 이어지는 문화적 뛰어남도 있지만 경제적 역량도 전주가 문화를 선도해 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지역문화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전주의 시장경제를 주제로 학술대회와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전주가 조선의 대표적인 대도시였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과 함께 새삼스럽게 든 생각이다.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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