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기분 좋은 식사시간을 즐기세요.
122. 기분 좋은 식사시간을 즐기세요.
  • 문창룡
  • 승인 2013.06.1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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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교육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면서 대화를 통해 가족 사랑과 인성을 키우는 시간으로 활용하자는 의도다. 

‘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이 음식을 먹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입의 즐거움과 배의 만족에만 치우치지 말라. 한 수저의 밥과 나물을 좋은 약으로 생각하며 감사하라. 네 이웃을 생각하며 먹으라.’ 옛날 사대부집안에 내려오던 ‘식사오관(食事五觀)’이다. 밥상머리교육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고전으로 여기는 내용이다. 식사할 때마다 다섯 가지 마음을 가르쳐주면서 먹을거리를 귀하게 여기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밥상머리교육 옹호론자들은 ‘식사시간을 어기면 밥을 주지 않았다. 자녀들에게 약속과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또, 식사시간에는 미리 읽었던 신문 기사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훗날 케네디가(家)가 가진 논쟁의 힘이 되었다.’는 케네디가의 식사시간을 소개하면서 당위성을 힘주어 강조한다. 사대부집안의 식사오관이나 케네디집안의 식사규율이 틀린 것은 아니나 왠지 부담스럽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은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밥상이 되어야한다. 한 수저의 밥이 약이라고 여기며 밥을 먹거나 배의 만족에 치우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식사시간에 따뜻함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더군다나 신문을 미리 읽고 견해를 밝혀야하는 식사시간은 더욱 그렇다. 의도가 좋다고 할지라도 밥 먹는 자리가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밥 먹는 자리에서까지 이웃과 사회문제를 끌어들이는 어른들의 횡포(?)인지 모른다.

아이가 마음 편하게 밥을 먹도록 해야 한다. 식감을 즐기도록 맛있는 밥을 차려주어야 한다. 밥 먹는 시간에 철학이나 원칙, 과도한 예의범절을 가르치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다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토론의 시간이라면 그 또한 즐겨야 마땅하다.

아이와 생활하다보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아침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이다. 부모도 졸리고 아이도 졸린다. 몽롱한 상태에서 주고받는 대화들이 서로를 언짢게 만들 수 있다. 식사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오히려 밥상머리교육에 대한 부담감이 식사의 본질이 흐려지게 할 수 있다. 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식사시간에 일어나는 일 때문에 부모나 아이가 언짢은 기분으로 직장과 학교로 떠나는 때가 많다.

아이의 불평을 받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심정으로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모의 애틋한 마음 씀씀이가 즐거운 식사시간을 만드는 힘이다.

유대인들은 밥상에서 아이를 혼내지 않는다. 어떤 잘못을 해도 식사를 마친 후에 꾸짖는다. 그들은 가족 구성원들이 밥 먹는 자리에서 편안한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참여하는 것을 즐긴다. 밥 먹는 시간에는 밥을 먹도록 해야 한다. 식사시간을 기분 좋은 만남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나고 보면 아이와 같이 밥 먹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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