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시대에 표류하는 국민연금
국민행복시대에 표류하는 국민연금
  • 최낙관
  • 승인 2013.06.1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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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에게 “국민행복과 희망의 새 시대”는 오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복지국가의 보호 아래서 100세 시대 인생 2모작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일까? ‘국민행복시대’는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희망의 새 시대를 위한 비전이자 궁극적 지향점임에 틀림없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도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자 로드맵이 아닌가? 하지만, 최근 국민행복을 담보해 줄 수 있는 사회보장의 한 축인 국민연금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그 논란의 핵심은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국가가 국민연금에 대한 지급보장을 명문화해 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갈등은 이제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치닫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고 있다. 이른바 ‘안티 국민연금’을 표방하는 한국납세자연맹은 국민연금폐지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에 불행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은퇴세대에게 최소한의 소득보장을 제공하는 공적인 사회보장시스템이자 안전망이라 할 수 있다. 건강, 산재, 고용보험과 함께 국민연금은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적 위험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복지사회의 척도이기도 하다. ‘개인보장’이 아닌 ‘사회보장’으로서 국민연금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득이 있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은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강제가입 원칙하에 국가가 보험자가 되고 국민이 피보험자가 되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계약으로 볼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계약관계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국가의 입장과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피보험자가 보험자를 신뢰할 수 없다면 원천적으로 그 계약이 성립될 수 없듯이,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한다면 국민연금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열되고 있는 국민연금 논란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의 문제임이 틀림없다.

비교적 짧은 국민연금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과 관련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전 정부는 우리의 국민연금제도가 현행대로 유지될 경우 2047년에는 기금이 완전 고갈될 거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국민연금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러자 내가 낸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국민들의 동요가 급속도로 확산하였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정부는 국민연금이 국가의 책임 아래 운영되는 법적으로 의무인 공적보험인 만큼 국가가 존속하는 한 연금지급이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대국민 설득으로 사회적 반발을 잠재운 바 있다. 당시 한목소리로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반드시 국민연금은 보장”된다는 정치권의 설득과 호소에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과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권이 위기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여·야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향후 연금기금이 소진되더라도 연급지급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법으로 명문화하자는 데에 합의하고 지난달 17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부채증가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제기했고 급기야 국회 법사위에서 국가의 지급보장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안은 보류되어 신뢰에 심각한 흠집을 내고 있다. 지금까지 무려 약 400조원이 넘는 기금을 적립하고 임의가입자의 수도 크게 늘어나 안정적인 운영을 해오던 국민연금은 정치권의 이율배반적인 태도 앞에서 신뢰의 대상을 상실한 채 힘겨운 항해를 하고 있다.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는 것일까?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의 사회문제를 논외로 한다 해도 현재의 연금구조에서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연금기금의 고갈은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예측에 동의한다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배타적 가치보다는 협력적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문제 자체에 함몰되기보다는 갈등을 합리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복지국가로 향하는 길목에서 연금지급보장이 국가의 책무라면 사족을 달아 회피하기보다는 애초의 합의대로 명문화하면 된다. 기금고갈이 문제라면 힘든 일이지만 제도개혁을 통해 최대한 늦출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들을 모색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은 확대 재생산 될 수밖에 없다.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층과 정치권의 희망적 비전뿐만 아니라 리더십이 아쉬울 뿐이다.

우리보다 앞서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던 선행주자들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연금개혁이라는 국가적 과제는 그 어디에서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복지선진국 독일 또한 체질개선으로 제 2의 도약을 위해 과거 힘겨운 노력을 했던 경험이 있다. 2003년 3월 독일의 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정치적 생명을 담보로 ‘아젠다 2010’이라는 개혁프로젝트를 단행한 바 있다. 이러한 조치는 복지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국가적 노력이었고 연금개혁 또한 ‘개혁 아젠다’의 한 축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결과 슈뢰더 전 총리는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정치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맞이했지만 국가적으로 독일은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를 굳건히 마련하였다. 사회적 저항과 반발을 넘어 성공적인 개혁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과거 독일의 정치적 실험은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힘겹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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