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順理)와 역리(逆理)
순리(順理)와 역리(逆理)
  • 김승연 목사
  • 승인 2013.06.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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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홍수 후 지하수가 지상으로 솟구치는 경우나 온천수나 용암 같은 것이 지상으로 치솟는 용솟음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용솟음도 일단 지상으로 분출되면 어김없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폭포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토리아, 나이아가라, 이과수 같은 폭포도 그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수백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할만한 엄청난 양이지만, 그 물들이 힘을 합하여 역류하지 않고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 과학적 원리를 중력에 의함이라 하는데, 물은 중력 에너지 퍼텐셜이 큰 높은 곳에서, 중력 에너지 퍼텐셜이 작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해서 힘이 부족해서나 모자라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3대 캐넌인 그랜드 캐넌이나 자이언트 캐넌, 그리고 브라이스 캐넌을 봐도 빙하가 흐를 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그 엄청난 산맥을 뚫어버렸기 때문에 그 장엄한 협곡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단 분수는 전기의 힘에 의해 잠시 역류할 뿐 그 힘이 끝나면 곧바로 낙하한다. 결국은 자연 진리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산에는 정상이 있지만 그 정상에 오른 자는 반드시 정상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지 않으면 자기발로 오른 그곳에서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악전고투하여 정상에 오르기는 하지만 임기를 마치면 어김없이 그 권좌에서 내려와 사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떤 자는 자신의 입으로 공약했던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거나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고, 아니 자신의 성공과 출세, 영달을 위해 억지를 부리다가 -그 억지 부림에, 아니 서슬 퍼런 절대권력 앞에 일부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잠시 굴복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역사는 가혹하리만큼 그를 평가를 하고 냉정하리만큼 심판한다. 그래서 독재자들의 말로(末路)는 동서고금을 통해 생애를 제대로 마감한 사람이 거의 없다. 자기 발로 내려왔으면 생명이라도 부지했을 텐데 물리적 강압에 의해 암살되거나 추방되거나 몰락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난날 그런 역사의 교훈을 알면서도 왜 순리(順理)를 따르지 않고 역리(逆理)를 추구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다 어리석어서 그랬지만, 나는 그런 어리석음을 절대로 범치 않으리라’는 자신감, 아니면 교만이 지배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육군 중에서도 유명한 최전방 사단에서 졸병으로 복무할 때의 일이다. 그 사단이 유명한 이유는 육군 창설 연대가 소속된 사단이요, 일명 진급 사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밀실에 걸린 역대 사단장들의 면모를 보면 그 이름만 대도 알만하다. 필자가 초년병으로 복무할 때 오 모 사단장은 무난한 사단장이었다. 그리고 상병이 되었을 때 박 모 사단장이 부임해왔다. 그런데 새 사단장이 부임한 후 사단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단장이 출동할 때 전령 같은 사병이나, 이동 중인 사병 대열을 만나면 세워놓고 군복무 규정을 묻는다든지, 관등성명을 외치게 했다. 사단장은 그 자리에서 평가한 후, 합격한 졸병에게는 무기명 휴가증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발급해주어 포상휴가를 보냈다. 그렇지 못한 사병들은 현장에서 기압을 받거나 지휘관이 문책을 당하거나 심하면 영창으로 직행했다. 그래서 사단 창설 이후 헌병대 영창이 초만원이 되었다. 문제는 휴가 규정이나 부대장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매일 수많은 사병들이 휴가를 떠나거나 영창을 향하게 되었으므로 오히려 부대 질서에 혼란이 오게 되었다. 사단장은 그것도 모자라 거의 매일 저녁 군부대를 불시 순찰하기 때문에 전 사단은 연일 비상 체재로 돌입했다. 그러면서 그 때 떠도는 소문이 박 모 사단장은 소장으로 진급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고들 했다.

그런데 그 결과 군 기강은 자리를 잡고 군복무 태도는 좋아졌는지 모르겠는데, 그만 대형사건이 터졌다. 우선 모 사병이 제대하면서 밀반출한 총기 몇 정이 부산에서 발견되었고, 사단 영내 침투 간첩사건이 터졌고, 명동 암달러상 암살 사건에 사용된 총기가 그 사단에서 밀반출한 칼빈 소총이었다. 그러더니 그렇게 자신의 진급만을 위해 안간힘을 쏟았던 박 모 사단장은 수사를 위해 도중하차를 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사단의 군기나 근무태도 개선이 군인의 사명감과 진정한 군인정신에서 나왔다면 모르겠는데, 자신의 성공과 출세, 영달을 위한 것이라면 그 진정성에서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때 필자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은 순리로 살아야지, 역리로 살면 안되는구나를 깨달았다.

성적, 진급, 승진, 포상(훈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꿈과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 하고,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데도 목표를 세워야 하지만, 꼭 일등만을 위해 공부를 한다면, 그 공부는 피곤하고, 긴장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러나 공부를 하다가 일등을 하게 되면 다음 기회에 다른 친구가 일등을 해도 속이 상하지 않는다. 직장의 승진이나 군대의 진급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다 보면 승진도 하고, 진급도 하게 되는데,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승진하고, 진급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료를 불법 추월하여 승진과 진급을 했다면, 해놓고도 기쁘지 않고 항상 불안한 법이다. 포상, 훈장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주어진 임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상도 받고, 훈장도 받으면 순리인데, 상과 훈장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일을 하여 상이나 훈장을 받으면 그건 역리다. 부모에게 효도도 그렇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수여하는 효자, 효부 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느 아들이나 며느리가 국가에서 수여하는 효자, 효부 상을 받기 위해 치매에 걸린 부모를 섬긴다고 상상해 보라. 어찌 그 효성이 진실된 효도라고 하겠는가? 자식 된 도리로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다보니 귀감이 되어서 받는 상이어야지. 모든 자연 진리는 순리이다. 그러므로 역리는 안된다.

김승연 목사<전주서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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