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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을의 논쟁에 대하여
이병화 하나대투증권 고문/법학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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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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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갑을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1990년대 초 독일대학에서 공부하던 때이다. 당시 독일 은행에서 사용하고 있던 은행약관의 1개 조문에 대한 논문과 책자가 서고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귀국하여 은행에서 사용하고 있던 수신 및 외국환 거래약관에 대한 전면적인 체계개편작업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경험이 있다. 그 당시 거래처나 고객이 약관을 작성하여 은행에 제출하면 은행에서 이를 계약으로 채택하는 채택형이었는데 이를 고객과 은행이 거래당사자로 서명하는 경우에 계약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약정형으로 바꾼 것이다. 수직적인 갑을 관계로 표시되었던 형식을 수평적인 동등관계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금융회사를 감독하거나 이용하면서 약관의 틀은 바뀌었지만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이나 자세는 아직도 수직적인 채택형에 머물러 있다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때가 많다.

약관의 틀이 채택형에서 약정형으로 바뀐 지가 20여 년이 지난 대선 때부터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잡을지 아니면 이조차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간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었던 일들이 도전을 받게 되는 등 가치판단의 기준에 많은 변화가 있다.

최근 프랜차이즈 20만 개와 대리점 80만 개 등 100만 개의 업체가 대표적인 갑을 관계로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갑을 관계가 비단 여기뿐이겠는가? 이 사회는 계약사회이고 삶은 거래의 연속으로 모든 거래관계는 계약에 의해 성립된다, 실제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아무런 의식 없이 사실상의 계약관계가 성립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계약내용을 누가 결정하느냐에 따라 갑을 관계가 결정된다. 이를 규제하기 위해 약관규제법 등이 있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약관내용을 심사하는 등의 감독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약관내용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를 계약서로 채택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거래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위험까지를 감수하면서도 그렇게 행동할 기업이나 개인이 이 땅에 얼마나 있겠는가? 2012년도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관리한 불공정 행위(Unfair business practice)에 해당하는 건수는 1,090건으로 전체 위반 유형의 77.6%를 차지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부당한 고객의 유인(58.6%)과 거래상지위남용(34.9%)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집행하고 있는 통계가 이 정도이니 공식화되지 아니한 현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곧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연속이고 그 관계는 문서에 의하든 관습에 의하든 계약관계이다. 즉 아침 집에 배달된 산문이나 우유로부터 시작하여 출근하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경우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모두가 계약관계이다. 평생 배우자를 확정하는 결혼식부터 살집을 구하거나 사는 문제도 그렇고 모은 재산을 금융회사에 맡기는 것도 계약이고 필요한 자금을 빌리는 문제도 계약서 작성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계약서는 거래 당사자가 서명 또는 날인해야 완성된다. 외형상으로는 동등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갑을 관계는 비단 거래관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작은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도 있고 학교에도 있으며 사랑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종교단체에도 있다. 그리고 갑을 관계는 고정된 것이라기보다는 수시로 변동된다. 이곳에서의 갑의 지위가 저곳에서는 을의 지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평생 을의 입장에 있다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경우도 회사 내에서는 갑이다. 직업적으로는 영원한 갑이라거나 슈퍼 갑이라는 곳에 근무하는 자들도 내부적 관계에 있어서는 다시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갑을 관계를 해결하겠다면서 계약서상의 갑과 을의 표현을 없애겠다는 내용도 보도되고 있는데, 갑과 을의 문제를 몰라고 한참 모르고 있거나 국민들이 그에 현혹될 것으로 기대하는 몰염치한 조치이다. 갑과 을은 계약당사자를 보다 편리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를 갑을이 아니고 A와 B로 표현하면 갑을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본질에 대한 심각한 의식의 부족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갑은 갑으로서 권한을 마음껏 행사하고 을의 입장이 되면 납작 엎드리면 되는가? 아니면 거래의 룰을 가급적 공평하게 하여 갑과 을의 구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까? 사회가 발전할수록 평등개념이 강해지기에 아마도 후자의 자세가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갑일 때는 을의 입장에서 쳐다보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갑의 입장에 있는 자들이 먼저 낮아지는 자세를 실천하라는 얘기다. 그 실천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직장내에서의 갑과 을의 간격을 좁히는 방안으로 호칭을 직책이나 직위 대신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바꿔 보라. 서로 간격이 훨씬 가까워질 것이다.

이병화<하나대투증권 고문/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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