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좀 하세요!
조용히 좀 하세요!
  • 이동희
  • 승인 2013.05.23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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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쯤 어느 장례식장에서 겪은 일이다. 오랜 세월 지역사회에 나름의 역할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평가받던 한 분이 돌아가셨다. 산업 ? 경제계에서 쌓은 업적과 문화 ? 예술계에서 이룬 성과로 70대 중반의 타계를 많은 이들이 애석해 하였다.

그날 장례식은 문인장이어서 필자도 참례하였다. 의식에 앞서 스님의 집도로 불교의식의 장의가 확성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영정 앞에는 유가족들과 불교인들이 모여서 사뭇 엄숙한 분위기였다.

한편, 넓은 장례식장 뒤편에서는 모처럼 만난 문인이며 지인들이 삼삼오오 목소리를 죽이거나 높인 채 인사말을 건넨다든지, 조심성 없는 휴대전화의 벨이 울리는 등 오랜만의 해후를 푸는 소란이 있었던가 보다. 그러던 중 확성기에서 갑자기 커다란 질책성 꾸중이 터져 나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조용히 좀 하시오!”

소란스럽던 개구리 방죽에 던진 일갈의 돌팔매였고, 왁자하던 시장터에 울리는 경보사이렌에 버금가는 일성이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조심성 없는 무례가 스님이 던진 단 한마디의 경고에 적막강산이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 질책성 일갈에 필자도 무심코 켜놨던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서둘러 바꾸는 등 무례를 만회하기에 충분한 일성이 되었다.

필자가 어쩌다 주제넘게 제자의 주례를 선 적이 있다. 요즈음 결혼풍속이라는 것이 인륜지대사로서의 의미적 맥락보다는 통과의례라는 형식성에 많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결혼식장의 풍경이 진지함과는 너무 멀어진 채 ‘무례의 의례’가 보편화된 지 오래다.

축의금을 건네면 식장은 외면한 채 피로연장으로 직행하여 식사부터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가 되었으며, 결혼식이 진행되는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해서 예식장은 도떼기시장처럼 소란스러운 것은 예삿일이 되었다. 이런 ‘무례의 의례’ 화를 외국인들이 보는 못마땅한 한국풍습의 1순위로 꼽는 것도 당연하다.

필자가 주례를 섰던 어느 예식장에서는 소란이 도를 넘어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가 그렇다. 10분 이내의 주례사 시간에 예식장 뒤편에서 예의 그 소란이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엄숙한 식전임을 주지하며 던진 한 마디도 바로 같았다.

“조용히 좀 하시오!”

주로 신랑의 친구들인 한 떼의 소란꾼들에겐 진정의 효과가 있었지만, 그 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경사스런 마당에 주례의 지나친 월권일 수 있다는 반응과 함께 그렇게 꾸짖으니 자기 속이 시원했다는 호응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경청할 만한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의 속담이 있다. “존경받으려면 말을 적게 하고, 건강해지려면 밥을 적게 먹어라”가 그것이다. 말이 필요할 때 함구하는 것도 대인관계에서 그리 득 될 것이 없겠지만, 말을 해서는 안 될 때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야말로 ‘무례의 의례’ 화를 촉진하는 제1의 경계 항목이라 해서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그의 책『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이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 장례식장에서 떠들어대고, 결혼식장에서도 소란을 피운다면 이것이야말로 인간성을 박탈당하는 것이며, 인간됨의 진정성을 놓치는 것이며, 마침내 사람다움의 핵심을 잃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외로움은 침묵을 낳고, 침묵은 생각을 낳는다. 생각의 받침대는 관념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생전을 생각하는 시간이며,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의 앞날을 축복하며 자신의 일생을 반추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렇게 침묵 속의 생각이 시간의 받침대가 된다.

누가 누구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지껄이는, 사색의 시간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정언 명령이 아닐 수 없다.

“조용히 좀 하시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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