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책임
자율과 책임
  • 최진호
  • 승인 2013.05.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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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는 1991년 지방의회 구성 이후 올해로 22년째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뿌리내릴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지방자치의 필요성 여부를 논하거나 부작용과 자질론을 운운하는 등 부정적인 면만 증폭시켜선 안된다.

어떻게 하면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고민할 때다.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율권을 확대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광역의원 정책보좌관은 의정활동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좌인력이다.

광역의원에게 정책보좌관이 필요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매년 광역의원이 심의하는 예산이 늘고, 국가지방이양사무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라북도의 경우 한해 예산 심의 규모가 지난 2011년 전라북도와 전라북도교육청 예산 6조2천억원에 이르렀다. 올해는 7조1천억원으로 무려 9천억원이 증가했다.

또한, 국가에서 지방으로 이양한 사무가 지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총 3천78건에 달한다. 단순히 지방으로 사무만 이양되는 것이 아니다. 사무가 이양되는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업무 또한 증가하고 있다. 지방의회를 둘러싼 환경 자체가 달라졌으며 지방의원의 손이 닿아야 하는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무이양에 따른 주민들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어서 관련 조례도 제정해야 한다. 그러나 조례제정은 헌법 제117조에 ‘법령의 범위 안에서’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때문에 광역의원이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선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부터 법령위배 여부 등 전반적인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광역의원 혼자서 예산도 심의해야 하고 조례제정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한다. 실제로 전라북도의회의 경우 의원 1인당 1천650억원의 예산을 심의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국회의원은 7~9명의 보좌진과 함께 1인당 1천억원의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

둘째, 전문위원실 운영이 제한적이어서 실효성이 낮다. 전국 17개 광역의회 전문위원은 231명이다. 내년부터 교육의원 선출제도가 폐지되면 광역의원이 855명에서 773명으로 광역의원을 보좌하는 인력이 의원 1인당 0.30명에 불과하다. 전라북도의회도 다르지 않다.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5명과 특별위원회 전문위원 1명, 정책연구원 5명 등 순수 정책보좌인력은 11명. 의원 1인당 0.29명이 정책연구를 하고 있는 것.

셋째, 복잡한 행정업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전북도청과 산하기관, 전라북도교육청 공무원 수는 대략 1만여명. 정부 방침대로 교육의원 일몰제가 시행되면 내년부터 전라북도의회 의원은 38명으로 줄어든다. 이들 의원들이 집행부에서 수행하는 복잡한 행정업무와 예산을 꼼꼼히 살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기엔 역부족이다.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광역의회 의원들도 지자체마다 수십조 원의 예산을 심의하고 수많은 규칙 조례를 만들며 각종 정책현안과 민원을 다루는데, 광역의원 혼자서 감시와 견제를 하라고 하는 것은 자율은 주지 않으면서 책임만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광역의회에 정책보좌관제를 도입하자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해마다 증가하는 예산과 사무를 보좌인력의 도움을 받아 면밀히 살피고 분석해서 의정활동을 지금보다 더 충실히 수행, 실질적인 주민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지사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실정이어서 광역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은 한계가 있다.

정책보좌관제 도입에 따른 예산낭비를 비판하기에 앞서 보좌관 도입으로 선심성, 낭비성 사업 등 전북지역 전체 예산 중 1%만 절약해도 그만큼 주민부담 경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정책보좌관들은 의원을 보좌해 예산을 심의하고 각종 자료를 검토, 의원들과 함께 정책을 수립, 조례를 입안하게 될 것이다.

광역의회 정책보좌관제 도입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은 불필요하다.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때다.

최진호<전라북도의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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