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와 시청률
막장 드라마’와 시청률
  • 김선남
  • 승인 2013.05.07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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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드라마가 TV시청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Tnms의 시청률조사(2013.5.4)에 의하면, 주중 TV시청률 탑10가운데 5개가 드라마라고 한다. 주말엔 시청률이 더 높아서 탑10가운데 8편이 드라마라고 하니, ‘드라마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우리가 현재 처한 불안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드라마 강세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 이유는 사회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정치엘리트들은 권력유지를 위해, 또 언론사는 돈벌이를 위해 드라마나 연예오락 프로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돌려놓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안보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이런 맥락과 상통한다. 즉, 방송사들이 남북 갈등으로 배가된 사회적 불안을 이용하여 드라마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언론이 ‘안보장사’를 한다는 말이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드라마 전성시대’는 몇 가지 이유에서 사회적 관심사가 된다. 먼저, 방송사들은 드라마로 시청률을 경쟁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내용이 저급하게 변질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방송환경이 변화하고 신규 방송사가 개국될 때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1990년대 SBS 개국 때도 그러하였다. 당시 방송3사는 시청률을 확보할 목적으로 드라마를 저질적이고 반윤리적인 내용으로 제작하였다. 그 결과,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인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히, MBC의 <아들의 여자>는 도를 지나쳐 저질문화의 대명사로 낙인찍히기도 하였다.

종편채널이 출범한 후 이런 현상이 재발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방송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품격 있는 방송문화시대를 열겠다면서 송출을 시작한 종편채널은 출범 초부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방송사 간 시청률 경쟁을 부추기는 부작용만 낳았다. 올 초부터 모든 방송사들은 마치 드라마로 사생결단을 하려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막장 드라마’를 양산하고 있다. SBS<야왕>, MBC<백년의 유산>, MBC<사랑했나봐>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예이다. 이들은 교통사고를 이용한 살인 장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는 장면,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는 장면 등과 같은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시청하기에는 정말 민망한 저급 소재들이다.

두 번째 이유는 드라마가 사회화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것은 드라마가 설정하는 상황, 인물 등이 현실과 흡사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현실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드라마는 시청자, 특히 청소년들에게 신념과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청소년들의 경우 등장인물을 자신의 준거집단(reference group)으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드라마가 등장인물이 저지르는 폭력, 범죄 등과 같은 반사회적 행위를 미화시키면 사회적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드라마는 공공성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방송법 제5조(방송의 공적 책임)도 “방송은 범죄 및 부도덕한 행위나 사행심을 조장해서는 아니되며(4항), 건전한 가정생활과 아동 및 청소년의 선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음란·퇴폐 또는 폭력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5항)”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이러한 책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불륜, 폭력, 범죄 등을 소재로 한 어떤 ‘막장 드라마’라도 시청률 확보에 도움이 된다면 서슴없이 방영하고 있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이들 ‘막장 드라마’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아직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라서 드라마가 묘사하는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인 내용을 여과 없이 학습하고 내면화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모방하고 재현할 가능성도 높다. 많은 청소년 범죄가 드라마의 모방범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이런 위험을 증명하고 있다.

드라마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점, 방송사가 공공성의 책무를 회피한다는 점, ‘막장 드라마’가 경쟁적으로 방영되고 있는 점 등은 드라마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물론 이에 대한 감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청자 집단, 시민단체, 방송학자, 관계부처 등이 꾸준히 드라마를 감시하여왔다. 예를 들면, 지난 3월에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제 25조(윤리성)에 따라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에 대하여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권고’의 제재를 내렸다. 문제는 이런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로는 ‘막장 드라마’가 절대로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우리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문화 배양에 기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막장 드라마’를 근절시키는 것이다. 정부는 이참에 폭력, 불륜, 패륜 등을 부추기는 ‘막장 드라마’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김선남<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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