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상하는 독일 ‘히든 챔피언’의 힘
다시 부상하는 독일 ‘히든 챔피언’의 힘
  • 최낙관
  • 승인 2013.05.0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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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는 독일의 ‘히든 챔피언’을 배우자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글자 그대로 숨은 강자를 의미하는 ‘히든 챔피언’은 특히 정계와 재계 그리고 일선 기업에서 우리 한국사회의 재도약을 위한 또 하나의 지향점으로 이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좀 더 부연하면 ‘히든 챔피언’이란 개념은 독일 출신의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인 헤르만 지몬이 1996년 처음 제시한 용어로 특정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3위에 이름을 올리는 실질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지만 매출규모는 40억 달러 이하인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견기업을 지칭한다. 요즈음 독일이 다시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독일 경제를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히든 챔피언’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종업원 500명, 연매출 5000만 유로 이하의 중소기업들이 독일 수출기업의 98%를 점하고 있고 민간부문 고용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독일은 세계시장에서 수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히든 챔피언’이 무려 777개나 있어 한국의 현실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무역 8강이라는 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최근 ‘히든 챔피언’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성장을 견인했던 대기업위주의 성장패러다임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불안심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그간 한국경제는 조선과 자동차 그리고 전기전자 분야의 대기업을 주축으로 수출을 주도했었다. 물론 이러한 성장의 발자취를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인 측면으로 이해한다 해도 일종의 ‘편식’을 통한 성장전략은 대기업 중심으로 자원을 집중시켜 결국 기업 활동을 왜곡하고 나아가 공정경쟁에 기초한 건강한 기업문화를 구축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성장의 모세혈관 역할을 담당했던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제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창조경제를 성장엔진으로 설정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독일의 중견기업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작지만 강한 독일 중견기업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질문의 해답은 독일 만하임대학교 중견기업 연구소(IFM: Institut fuer Mittelstandsforschung)에서 찾을 수 있다. 중견기업 연구소(IFM)는 독일 중소·중견기업의 특징으로 가족기업을 들고 있다. 독일 내 가족기업은 300만개 정도로 전체 중소 및 중견기업의 약 95%에 달하는 절대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 중 1천300여 개에 달하는 ‘히든 챔피언’ 가운데는 100년 이상 된 장수 가족기업이 1천여 개나 될 정도로 그 역사가 탄탄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독일형 복지국가의 첨병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중소·중견기업은 모든 과세거래의 약 37%를 수행하고 있으며 사회보장의 의무를 지고 있는 모든 종사자의 60.2%를 고용하는 저력이 있다. 즉 흔들리지 않는 독일 경제와 복지국가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쟁력 있는 가족기업으로서 독일의 중소·중견기업의 성공시대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세계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기술력은 일차적으로 가족이라는 유기적 연대를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특화하는 기업경영에 기인하지만 더 크게는 ‘인본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독일만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성공의 토양이라고 감히 평가해 볼 수 있다. 즉 이러한 토대 위에서 평생직장을 보장하는 신뢰와 합의의 노사문화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공동체 의식은 독일을 당당히 ‘히든 챔피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독일의 성공은 통독 후 기업경영과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구동독지역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며 바로 그 때문에 향후 독일의 성장잠재력은 더욱더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박근혜 정부는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중견기업 정책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중소기업청으로 이관했다. 그간 진행되었던 ‘월드클래스 300’과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 사업’이 중기청 소관으로 통합되어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정부 이전부터 한국의 ‘히든 챔피언’을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있음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미약하다는 점이 우리의 문제이자 과제로 남고 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는 지난 2009년부터 ‘코스닥 히든챔피언’을 선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첫해 32개 기업이 히든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2010년 29개, 2011년 37개, 2012년 26개, 2013년 26개의 기업이 선정되었지만 올해 신규로 진입한 회사는 7개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시그널도 있다. 극심한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이들 7개사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은 19%, 평균 영업이익률은 13.7%라는 성과를 일구어냈다. 이는 한국 10대 그룹 평균 영업이익률 7%의 약 2배에 해당하는 놀라운 결과이다.

이제 우리는 성장엔진과 체질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목표를 보았다. 이는 크게 볼 때 국가적 과제임이 틀림없지만, 작게는 지역의 과제이기도 하다. 전라북도처럼 상대적으로 기업의 수가 적고 규모가 작은 우리 지역에서 더욱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대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우리 지역의 중소기업을 더욱 육성하고 발굴하는 노력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자 목표임을 직시해야 한다. 후발주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역량집중이 필요한 때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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