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625>여전히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가루지기 <625>여전히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 최경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5.0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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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강쇠의 전성시대 <5>
 ‘흐, 이 여자도 색깨나 밝히겄구만. 흐기사 모르제이. 오다가다 쓸만허다 싶은 사내럴 만내면 치마끈 풀고 속곳 내려주는 헤푼 계집일지도.’
 
강쇠 놈의 경험에 의하면 눈에 물기가 많은 계집일수록 아랫녁 인심도 넉넉했다. 그런 계집들은 남의 눈만 없으면 아낌없이 살인심을 썼다. 
 
강쇠 놈이 침을 꿀꺽 삼키는데, 방물장수 여자가 돌아보았다.
 
“묵다 남은 밥 좀 없소? 남정네 혼자 있는디 밥타령해서 미안시럽소만, 다 묵고 살자고 허는 짓인디, 밥 좀 얻어 묵읍시다. 밥 값은 주리다.”
 
“밥언 없고, 쌀언 있는디요이.”
 
강쇠 놈의 말에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허면 됐소. 아궁에 불이나 피워주씨요. 밥언 내가 허리다.”
 
“그러실라요? 나도 배가 고픈 참인디, 밥 해서 함께 묵읍시다. 밥 값언 따로 안 받제요.”
 
강쇠 놈이 먼저 부억으로 들어갔다. 
 
강쇠 놈이 부싯돌로 불을 일구는 사이에 여자가 마치 자기집 부억처럼 쌀독에서 쌀을 퍼내고, 물동이에서 물을 퍼내어 씻은 다음 조리로 일어 솥에 앉혔다.
 
“아자씨는 멀 해묵고 사요? 이부자네 논 소작짓고 사요?”
 
가리나무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자 여자가 돌아보며 물었다.
 
“그냥저냥 사요. 논 몇 마지기 있는 것언 넘헌테 지어묵으라고 줬소.”
 
치마를 반 쯤 걷어올려 무릎을 드러낸 채 가랭이를 쩍 벌리고 앉아 부지깽이로 불길을 헤짚는 여자의 모습에 또 숨이 컥 막힌 강쇠 놈이 쉰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보기보다넌 부잔갑소이.”
 
“부자넌 무신. 일허기가 싫은깨 글제요. 넘의 집 머슴도 몇 년얼 살았소만, 아직꺼정 못자리럴 어떻게 허고 모럴 어떻게 심는가도 몰르요.”
 
강쇠 놈이 가리나무 한 줌을 아궁이에 던져 넣으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불빛에 어른거리는 여자의 눈은 여전히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서방니임, 서방니임, 하면서 파고들던 옹녀 년을 닮아있어 강쇠 놈이 또 침을 꿀꺽 삼켰다. 주인 놈의 그런 속내를 눈치 챈 성질급한 놈이 고개를 치켜 들고 껄떡거렸다.
 
‘이눔아, 가만히 좀 있그라.’
 
강쇠 놈이 슬며시 돌아앉아 성질급한 놈을 손아귀로 꽉 움켜쥐며 중얼거릴 때였다. 방물장수 여자가 갑자기 호호호 웃어제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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