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대한 복종
권위에 대한 복종
  • 조 미 애
  • 승인 2013.05.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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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 갔다가 하얀민들레 한포기를 가져왔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흰색 민들레꽃이 길갓집 마당 초입에 빙 둘러 피어있는 것이 좋아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주인아저씨께서 가져가라 하신다. 갓털에 씨를 달고 날다가 내려앉은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다시 피어나는 것이 민들레다. 꽃잎이 크고 노란 서양민들레와 달리 어머니의 속치마를 생각하게 하는 하얀민들레가 토종이다.

포기지어 자란 잎들은 서로에게 햇볕을 조금씩 양보하기 위해서 위에 놓이기도 하고 아래 걸치기도 하면서 꽃을 보호하고 있었다. 땅위에서는 꽃과 잎들이 어우러지고 땅속에서는 뿌리들이 서로 물과 양분을 나누는 것이다. 주인의 손길이 없어도 식물들은 제 스스로 씨를 만들고 옮기면서 긴 겨울을 견디어 싹을 틔운다. 거친 땅을 마다하지 않고 꼿꼿하게 자란 민들레가 밭을 이루었는데 유난히도 흰 꽃이 돋보인다.

권위도덕權威道德이라는 말이 있다. 기성의 권위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으로 흔히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도덕을 말한다.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1961년에 기억력에 관한 실험을 도와줄 사람을 모집했다. 20대에서 50대까지 모인 40명의 지원자들은 교사의 역할을 맡아 실험실 칸막이 뒤에 있는 학생이 문제를 풀이하는 동안 15볼트부터 450볼트까지 적혀 있는 30개의 버튼과 그것에 의해 작동하는 전기충격기를 이용하여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올려 누르라는 지시를 실험자로부터 받았다.

물론 실험자와 학생은 사전에 약속한 사람들로 실제로 전기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오직 교사역할을 맡은 지원자들만 이 실험의 목적과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교사가 간단한 문제로 질문을 하면 학생은 시나리오대로 틀린 답을 말하고 그때마다 전기충격이 가해졌으며 학생은 고통스러운 척 비명을 지르는 연기를 했다.

지원자들에게는 1시간의 실험을 위해 4달러가 지급되었다. 일부가 도중에 머뭇거렸지만 실험자가 계속하라는 요구에 결국 40명중 26명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했다. 300볼트 단계에서 실험을 거부한 사람은 불과 35%밖에 되지 않았다. 450볼트의 전압은 실제 사람에게 가해지면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강도다. 실험이 모두 끝난 후에 왜 전기충격을 멈추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지원자들은 실험자로부터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말을 계속하여 들었던 것이다.

전체의 65%는 실험자의 권위에 대해 복종을 선택한 것이다. 권위에의 복종은 자기합리화와 책임감의 회피가 만들어낸다. 권위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만든다. 그리고 자주 자신의 양심과 권위를 맞바꾸곤 한다. 일부 사람들이 부적절한 제안이나 지시를 받아 비리에 연루되는 것은 권위에 대한 복종 때문이다. 신뢰를 주거나 권위를 부여해 버리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있다고 우리의 뇌가 믿는 것이다. 비합리적이고 부정한 행동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에 두는 행위다.

이 실험은 본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충분한 지성과 교양을 갖춘 나치정권의 장교들이 어찌하여 히틀러의 비이성적이고 그토록 잔인한 명령에 절대복종하여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었다. 상황과 권위에 쉽게 굴복하는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생각하면 생태계에서 보여주는 공생하는 식물의 세계는 한없이 숭고해 보인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보리 몇 그루가 꽃처럼 길가에 서 있다. 오월의 푸르른 햇살을 받고나면 통통하게 여물어 동네아이들 손에 두어줌의 여린 보리쌀을 얹어줄 수 있을 것이다. 노랗게 핀 장다리꽃과 유채꽃 물결이 남해바다처럼 출렁이는 평화로운 봄날이다.

조 미 애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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