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수 영화평론가가 본 jiff -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 <성>
장병수 영화평론가가 본 jiff -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 <성>
  • 장병수
  • 승인 2013.04.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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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수 영화평론가가 본 jiff
-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 <성>- 왜 인간은 소속되고 싶어 하는가?

1997년 미하엘 하네케 Michael Haneke 감독에 의해 제작된 영화 <성 The castle>은 우리에게 [변신 Die Verwandlung, 1915]이란 작품으로 잘 알려진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의 동명의 미완성 장편소설인 [성 Das Schloss, 1926]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특히 하네케 감독은 원작소설 [성]이 장편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내용 전달의 충실함을 위해 무성영화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해설자(Der Erzaehler)’ 기법을 응용한다.

측량기사라는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주인공 K(Ulrich Muehe)는 성 근처의 한 마을에 도착한다. 그는 첫날부터 마을주민들의 노골적인 적대감과 마주한다. K는 다음날부터 자신을 고용한 사람을 만나려하지만 성의 관리는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그가 만나는 사람은 관리의 비서 혹은 심부름꾼이었기에 작업지시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성의 하급관리 클람과 연인관계에 있는 프리다를 통해서 클람에게 접근하려 하지만 클람과 프리다가 진짜 연인관계인지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어느 날 K는 마을의 이장으로부터 통보를 받게 되는데 학교수위로 근무하라는 것이었다. 측량기사로서 임무는 언급조차도 없다. K는 측량기사로서 성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설명하면 할수록 그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점점 더 멀어진다. 성으로 들어가려는 노력과 위탁자와의 대화 시도는 끝까지 성사되지 못한다. 어쩌면 그가 도착한 첫날부터 주인공 K는 이방인이었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을 존재의 가치 확인을 위한 고뇌와 노력을 한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즉 그는 어느 사회에도 속할 수 없는 이방인에서 어떻게 하면 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사회에 소속하게 될 것인지 피나는 투쟁을 해왔다. 그의 이러한 노력을 집약한 작품이 바로 미완성의 장편소설인 [성 Das Schloss]이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실존주의적 철학은 하네케 감독에 의해서 "추운 겨울 밤"과 "검은 프레임(black frame)"을 이용해서 전달하고 있다.

하네케 감독은 카프카 소설 [성]의 초현실적인 세계를 보잘 것 없는 세트화를 통한 겨울 풍경하에서 연출했다. 그에게 있어서 추위는 언제나 인간들의 침묵과 그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본질적인 테마가 되었던 소통부재라는 주제로 점점 더 자리매김해 갔다. 영화에서도 K는 시종일관 칼바람이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성에 입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정한 소통은 이루지 못한 채 그는 언제나 이방인으로 머문다. 이런 장면에서는 그가 걸어가는 장면을 수평 트랙킹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그의 노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방인 K의 한계상황은 매 장면 전환에서 보여주는 검은 프레임을 통해서 극명하게 전달된다. 검은 프레임은 흔히 공포영화 같은 스릴러 영화나 실험영화에서 관객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데, 하네케 감독은 영화 <성>에서 매 장면 전환을 검은 프레임 기법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서 K의 성으로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며, 영원히 성과 마을에 있어서 이방인이 되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하네케 감독은 영화 <성>에서 주인공 울리히 뮈에 Ulrich Muehe의 인상적인 연기를 통해서 주인공 K의 연이은 단념과 고립에 초점을 맞추어 카프카 소설을 효과적으로 영화화했다. 영화 <성>은 카프카가 던진 “어떻게 해서 이 사회에 소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각자가 지향하는 사회에 속하기 위해 그 사회의 ‘법(法)’을 알아야 함을 알려 준다.

/ 장병수<호원대 교양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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