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너그러움으로 아이를 대한다는 것
116. 너그러움으로 아이를 대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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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2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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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116. 너그러움으로 아이를 대한다는 것

옛날의 부모들은 그들의 방법이 맞든지 틀리든지 확신을 가지고 행동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부모들은 그렇지 않다. 부모들이 아이와의 관계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가 평생 동안 겪어야 할 고통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나 아이가 하는 대로 놔두는 것까지도 염려스럽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주저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너그럽게 대해야 함은 사실이다. 너그러움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너그러움 속에서 인간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 너그러움 속에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표현할 수 있다면 행복한 아이다.

아이들은 느낌을 가진다. 그 느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억지로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바람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느낌이 감정이다. 아이의 거침없는 감정표현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만나보면 아이들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염려하면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한다.

여자 아이인 S가 학교의 1박 2일 극기 훈련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S의 엄마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각종 학교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면 좋으련만 매우 난처해졌다. ‘왜? 무슨 일 때문이지?’하고 걱정이 앞섰다. 친구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담임과의 관계가 불편한 것 같기도 했다. 나쁜 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부모가 관여하여 아이가 납득할만한 출구를 찾아주어야 한다. 너그러움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감정의 출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의 너그러움은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상의 행동을 인정하는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너그러움과 자유방임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그래, 그럼 극기 훈련에 가지 마렴.” “진짜 그래도 돼?” “마음대로 해.” S의 엄마가 이렇게 반응했다면 자유방임이다. 자유방임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눈감아 주는 것이다. 자유방임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게 되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권리를 계속 요구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반대의 상황을 예로 들어 보겠다. “극기 훈련에 가기 싫은 모양이구나.” “예.” “마음이 편하지 않아?” “예.” “무엇 때문에 불편한데?” “남자 아이 때문이에요.” “그래? 왜 그런지 말해 줄 수 있어?” “그 애가 내 지우개를 몽땅 빼앗아 버렸어요.” “그래서 화가 났구나. 남자 아이가 널 싫어한다고 생각해?” “그래요. 맞아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예.” “극기 훈련에 참가해서 친구와 친해져 보는 것은 어때?” “….” “며칠 더 잘 생각해보고 우리, 다시 그 문제를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그럴게요.”

이처럼 부모가 아이에게 너그러움을 보여주며 아이의 감정을 받아들여 주면 아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자신감을 얻는다. 아이의 감정을 확인해 주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너그러움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아이가 극기 훈련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그 요구를 받아주는 것은 부모의 교육적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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