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그리는 화가? 황재형
영혼을 그리는 화가? 황재형
  • 이흥재
  • 승인 2013.04.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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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선생은 “예술가는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해야하며, 예술작품은 그 영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마르셀 뒤샹의 말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되기보다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작가이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리고 사진을 잘 찍는 화가나 사진가가 아니라 진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나는 그런 황선생을 1980년대 후반 어느 추운 겨울 태백역 광장에서 처음 만났다. 훤칠한 키에 덥수룩한 수염이 누구나 한번 보면 범상치 않은 예술가로 볼만한 풍모를 지녔었다. 그 시절 나는 전주에서 고등학교 영어선생을 하며 막연히 미술에 호기심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 뒤 겨울방학이면 나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정수를, 김두해 선생은 아들 성규를 데리고 열차를 타고 조치원에서 그리고 제천에서 태백선을 갈아타고 다녀오곤 했다. 그러다 전주 온다라 미술관에서 황재형 선생 개인전이 열렸었는데, 그때 황선생 부부는 우리 전세방에서 같이 머무르기도 했었다.

김두해 선생과 함께 강원도 탄광여행을 갔다가 시작된 예기 하지 않은 만남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이번 <1980년대 예술운동 현장의 작가들> 전시에서 만나게 되었다. 전시 개막 날 작가를 초대한 관장으로서 황선생을 만나게 되어 참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재형 선생이 1980년 중앙미술대전에서 <황지 330>이란 제목의 그림으로 장려상을 받고 난 후 1983년 가족 모두 태백에 들어가 살아온 지 30년이 된다. 1970년대 삼척의 광산촌을 견학하고 나서 소외된 노동자들과 그들의 무거운 삶의 무게를 그리겠노라 결심하게 되면서부터 태백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탄광촌을 단순히 작품의 소재로서만 차용한 것이 아닌 본질로서 다가갔다. 탄광촌 노동자들의 막장과 같은 삶을 단순히 관망하는 것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자청하여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노동현장에서 직접 광부생활을 경험했다. 황재형 선생 작품이 언뜻 보기에는 그곳의 인물이나 풍경의 겉모습만을 묘사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간과 자연 그 자체의 본질을 화면에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구로, 가리봉동 같은 외곽지역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삶을 봤다. 그 공장지대에서도 쫓겨난 사람들이 가는 곳이 탄광촌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좁은 시야로 보면 막장이란, 인간이 절망하는 곳이다. 막장은 태백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

황재형 선생이 한 말이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그가 묘사하고 있는 풍경은 태백 탄광촌이라는 특정한 장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소외된 인간 누구나 느끼고 있을법한 공허함과 절망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전북도립미술관 <1980년대 예술운동 현장의 작가들> 전시에서는 “삶의 주름, 땀의 무게”라는 주제의 황재형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작품 중 『선탄부 권씨』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선탄부는 탄광에서 채굴한 석탄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는 인부들이다. 선탄부들 중에는 갱도에서 사고로 광부 남편을 잃은 미망인을 생계지원 차원에서 고용한 여성인부들이 많다고 한다. 광부의 아내는 남편이라는 하늘, 남편이 갱도에서 보는 검은 하늘, 자기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삶이라는 세계의 하늘을 이고 산다고 한다. 막장인생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남편마저 잃은 여인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감당하는 버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황재형 선생은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살기 힘들어 잠조차 잘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예술을 하리라, 너무 편안해서 모든 게 권태로운 사람들에게는 회초리 같은 경각심을 주려 했다고 말한다.

화사한 꽃비가 내리는 4월, 진실 자체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탄광의 막장에 들어간 이 시대 진정한 리얼리스트 황재형을 만나 삶의 진실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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