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浮雪)거사 의 팔죽시(八竹時)
부설(浮雪)거사 의 팔죽시(八竹時)
  • 황병근
  • 승인 2013.04.0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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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浮雪)거사 의 팔죽시(八竹時)

1. 부설거사의 위대한 도력

2. 팔죽시의 교훈

신라때 의상(義湘)과 원효(元曉)와 함께 삼대선승(禪僧)으로 고명한 부설(浮雪)은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으로 선덕여왕때 경주 출생이다.

5세때 경주 불국사에 출가하여 원정(圓淨)선사의 제자가 되었으며 일즈기 7살에 법문에 통달했다. 그뒤 영희(靈熙) 영조(靈)등과 함께 지리산 천관산을 거쳐 능가산(변산) 법왕봉 아래 묘적암(妙寂庵)을 짓고 수년동안 수도하다가 문수도량(文殊道場)을 순례하기 위해 오대산으로 구도의 길을 떠나던 중 김제 만경들이 있는 두릉(杜陵)의 구무원(仇無怨)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그집의 18세되는 딸 묘화(妙花)는 나면서부터 벙어리였으나 부설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열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부설을 사모하여 함께 살기를 애원 했으나 부설이 승려의 본분을 들어 이를 거절하자 묘화는 자살을 기도하였다. 부설거사는 모든 보살의 자비는 중생을 인연에따라 제도(濟度)하는 것이라 믿고 묘화와 부부인연을 맺었다. 아마도 인간의 본성인 사단(四端)의 첫번째 이며 인(仁)의 시작인 측은지심(惻隱之)의 발로가 비구승의 계율을 깨는 도심(道心)이 발동 했으리라. 15년을 살면서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은뒤 애들을 부인에게 맡기고 수도에 전념하여 5년만에 크게 득도했다. 부설을 두고 떠났던 영희와 영조가 오랜 수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부설을 찾아왔다. 세사람은 서로 도력을 시험하기 위해 물병 세개를 달아놓고 각자가 돌로 쳐서 물이 흘러내리는지 아닌지를 시험 하기로 했다. 두사람은 병이 깨지면서 물이 흘러 내렸으나 부설거사의 병은 깨졌어도 물은 그대로 공중에 달려 있었다. 속세에 머물러 수도한 부설의 깨달음이 출가 수도한 두 벗을 앞질렀던 것이다. 도를 닦는다고 흔히 심산유곡을 찾고 있지만 도력(道力)이 어찌 고요한 산중에서만 얻어지는 것이겠는가. 오직 어떠한 환경에서도 사심(邪心)과 과욕(過慾)을 깨끗이 버릴수있는 정심(定心)을 바로 할때 무서운 도력이 발휘 될것이라 믿는다. 부설거사는 참된 법신(法身)은 생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는 설법을 한뒤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선악(仙樂)이 울리는 가운데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으며 영희와 영조가 다비(茶毘)하여 사리를 변산 묘적봉에 안치했다. 그뒤 아들 등운과 딸 명월은 그때 출가하여 도를 깨우쳤으며 부인 묘화는 110살까지 살었다. 부설이 딸 이름을 따서 창건한 월명암은 진묵대사를 비롯한 행암(行庵) 용성(龍城) 고암(古庵) 해민(海眠) 소공(簫空)등 명승들이 수도를 했던 호남 3대 영지로 꼽힌다. 부설거사가 입적하기 전 수도 시절에 욕심에 허둥대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명시를 남겼는데 대죽(竹)자를 음역하여 우리말의 뭣뭣“대로”의 뜻으로 대죽자를 넣어 지은 팔죽시가 있다. “차죽피죽 화거죽(此竹彼竹 化去竹)”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풍타지죽 랑타죽(風打之竹浪打竹)”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죽죽반반 생차죽(粥粥飯飯生此竹)” 죽이면죽 밥이면밥 이런대로 살고 “시시비비 간피죽(是是非非 看彼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대로 보고 “빈객접대 가세죽(賓客接待家勢竹)” 손님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매매 세월죽(市井賣買歲月竹)” 시장 물건 사고팔고 하는것은 세월대로 “만사불여 오심죽(萬事不如吾心竹)”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해도 “연연연세 과연죽(然然然世過然竹)” 그렇고 그런세상 그런대로 보내네. 비구승의 신분을 무릅쓰고 혼인도 하고 자녀도 생산하며 세속생활에 적응 하면서도 탈속(脫俗)과 해탈(解脫)의 경지에서 초인적인 도력을 발휘한 부설거사의 팔죽시야 말로 무아의 보시를 교리로 하고있는 불심의 소산임이 다름 아닐 것이다. 어쩌면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오히려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것 같다. 무위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다는 말이니 부설거사의 팔죽시도 같은 맥락에서 표출된 시로써 속세인들의 몰염치 하고 추악한 탐욕 세계를 질타하기 위한 경종(警鐘)적 의미의 시가 아니겠는가. 팔죽시와 같이 순리에 따라 세상사에 초연한 도인(道人) 앞에서는 세상을 호령하는 추상같은 권세가나 재력으로 세상을 전횡하는 억만장자도 한낱 미물에 불과한 법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요직의 지명자 청문회 결과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 아닐수 없다. 권력형 비리는 직급이 높을수록 정비례하며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여섯명의 장차관이 낙마의 불명예를 안었다. 분별없는 과욕의 망령이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총리와 장관등의 자리를 국민의 심판에 의해 잡었다 놓치는 치욕을 남겼다. 탐욕은 덕의 씨를 말린다 했으며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다. 다시한번 부설거사의 팔죽시를 되새기게 한다.

황병근 / 성균관유도회 전라북도본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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