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이웃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잔인한 4월, 이웃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 최기용
  • 승인 2013.04.01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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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은 천안함 피격 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전날까지도 매섭던 꽃샘추위가 이날은 아침부터 누그러 들었다. 천안함 용사에 대한 방방곡곡의 추모열기가 꽃샘추위 심술 정도는 녹여 버린듯 했다. 그날 국립임실호국원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추모의 물결이 넘쳤다. 관내 고사리 같은 초등학생은 물론 국군장병과 그리움 따라 봄기운 따라 찾아온 유가족과 일반 시민 들이 현충탑을 참배하고 추모식에 동참하여 천안함 전사장병의 이름을 부르며 그이름을 풍선에 높이 띄어 보내는 등 하루종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전사장병을 기억하고 명복을 빌면서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이제 자연의 생명력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4월이다. 산수유는 핀지 이미 오래 되었고 매화며 진달래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다. 다소 역설적이다. 꽃과 잎이 무성한 계절임에도 한편에 자리잡은 황량한 경험과 4월의 생명력 안에서도 결실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었던 개인적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표현이겠지만 가끔은 평범한 우리도 자연의 변화와 어울리지 않게 공허한 마음이 생길 때면 위안을 얻는 싯구가 아닐까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국립임실호국원은 국립묘지로 호국의 성지다. 국민의 안보의식과 호국정신 선양을 위해 대한민국 호국의 역사를 명상하며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역사의 교훈을 찾고자 설치된 국가 상징시설이다. 4월이 열리는 아침, 튼튼한 국가안보가 행복한 대한민국이다는 믿음을 지켜가기 위해 이달의 교훈을 생각해 본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했다. 베트남은 19세기 중반부터 이지역을 지배했던 프랑스로부터 독립은 하였으나 50년대 중반 우리와 유사하게 남(월남)과 북(월맹)으로 나뉘었다. 당시는 냉전의 분위기가 첨예하던 시기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지역도 국제적인 조류에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중국과 구소련은 베트남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대를 꾀했고 이 상황에 대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은 심각하게 우려하였다. 베트남이 무너지면 인도차이나 지역은 물론 미얀마와 타이 그리고 인도네시아까지 미칠 연쇄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자유진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공산세력의 공세가 더욱 거세져 월남이 흔들리자 이를 지원하던 미국은 월남의 공산화와 인도차이나 지역의 공산주의 확대를 막기 위해서 1964년 8월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전쟁이 가열되면서 미국의 파병인원도 계속 증가해 약 55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우리나라와 필리핀, 타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도 지원군을 파병하였고 우리는 비전투요원을 시작으로 약 30만여 명의 병력을 파병하였다.

당시 우리 국군은 월남 파병을 통해 군 현대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국가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가져왔지만 희생도 만만치 않았다. 민주주의와 자유,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 군도 약 5천여 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미국은 막대한 인적 희생과 전비 지출로 추가 여력의 한계와 강한 반전여론 등에 직면하여 불가피하게 출구전략을 모색하게 되었고 1972년부터 본격적인 평화교섭이 시작되어 이듬해 1월 정전협정에 합의한다. 하지만 정전협정에도 불구하고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월남은 패망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공산세력은 진정성이 없는 평화협정을 통해 미국의 지원을 약화시키고 이 틈을 이용하여 총공세를 벌여 전략적으로 월남을 공산화한 것이다. 또한 우려대로 주변 지역은 공산세력이 확산되었고 이후 킬링필드로 상징되는 수많은 비극이 이지역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월남이 패망하자 우리에게도 심리적 타격이 컸다. 우리의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는 인도차이나 사태가 터지자 바로 대통령 특별담화가 발표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월남패망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을 것을 국민들에게 주문하며 힘의 균형이 없는 상태에서 공산주의자와 평화협정 같은 거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지적하였다. 또한 국론분열을 경계하며 스스로 지키겠다는 자주국방의 결의와 능력이 없는 나라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역사적, 지정학적 형편이 월남과 비슷한 우리로서는 비록 이웃나라의 지난 일일지라도 우리는 생존의 문제이기에 역사의 거울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미군철수를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주장하거나 잦은 무력도발과 위협으로 정치불안과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작금의 북한 행태를 볼 때 월남 패망 과정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 남의 일만이 아니다.

북한은 정전이후에도 무력도발을 멈추지 않더니 최근에는 핵과 미사일을 실험발사하면서 공공연히 무력도발 위협을 서슴치 않고 있다.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이단아로 고립을 자초하는 자폐적 증상이 무척 빈번하다. 올해로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는다. 60년이라는 긴 시간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도 끝나지 않은 6?25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뒤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방심하면 언제라도 참혹한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불안전한 평화의 진실은 현실임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행복과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과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경제적 안정과 번영도 물론 필요하고 시급한 과제지만 이는 튼튼한 국가안보 위에서 가능한 문제다. 따라서 국가의 번영과 안보는 우선순위가 없고 온 국민이 함께해야 할 동전의 양면이다.

역사의 파편은 항상 교훈을 만든다. 그리고 그 교훈을 잊거나 대비하지 않은 자에게는 다시 더 강한 파편으로 다가와 더 큰 상처를 준다. 공산주의자들의 교묘한 거짓 평화협정에 속아 국가안보를 소홀히 하고 국론이 분열되어 역사에서 사라진 이웃의 교훈을 그동안 잊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보며 불행한 역사의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최기용(국립임실호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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