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와 창조경제
로컬푸드와 창조경제
  • 원용찬
  • 승인 2013.03.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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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서신동 쪽으로 언제나 붐비는 이마트 앞을 지날 때 마다 벌써 10년 전인가, 전주 이마트 법인화 운동이 한창일 때 토론회에서 발제도 했던 생각들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이야 크게 색다를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거대한 외부 유통자본에 대항하는 방안으로서 지역의 순환경제를 강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지역경제는 바로 도시와 농촌 그리고 생산과 소비가 지역 내에서 상호 순환하는 모델을 통해 자생적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이런 질문도 던졌다. 몽골에서 자체의 말 젖을 소비하기 보다는 값이 싸다는 이유로 다국적의 덴마크산 우유와 유제품을 소비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지구 반대편을 빙 돌아 유제품이 운반되는 수송과정에서 엄청난 환경오염이 야기되고 몽골의 토착경제도 붕괴되고 말 것이다. 이제 성큼 세월은 흘러 시민의 역동적인 힘들이 뭉쳐서 전주가 최초로 대형유통업체의 영업규제를 전국화하는 시발점이 되었고 또 완주군의 로컬 푸드가 새로운 순환경제의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선도자로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로컬 푸드는 글로벌 식품시스템에 대항하여 안전한 먹거리 공급, 소비자 건강, 먹거리 이동거리의 감축, 지구환경 개선이라는 생태 안정적인 목적 못지않게 소농 육성과 도농 순환경제의 활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핵심적인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더구나 로컬 푸드는 당일 생산된 신선한 야채꾸러미를 당일날 먹는다는 소비변화의 현상을 뛰어넘어 튼튼한 소농 육성, 고령 농촌인구의 생산적 복지, 귀농인구의 토착화, 협동조합, 다양한 품목의 생산능력 등 구조적 경제변환의 가능성까지 담아내는 새로운 구조변화라 볼 수 있다.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가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수목(樹木) 모델과 대비시켰던 유명한 리좀(rhyzome) 모델처럼 농촌의 다양한 소농과 생산 주체들이 땅속 줄기식물의 실뿌리처럼 서로 엉키거나 이질적인 것을 융합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심층의 깊이를 더해가는 패러다임의 전환도 같은 맥락을 이룬다.

박근혜정부가 화두로 삼는 창조경제 역시 일단은 거대한 나무와 작은 나무들이 서열을 이루고 서로 배척하거나 우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처럼 수직관계를 이루는 수목 모델의 틀에서 벗어나는데 있을 것이다. 대신에 리좀 모델처럼 작고 아름다운 주체들이 그물망이나 뇌신경망의 뉴런처럼 서로 융·복합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지식과 기술, 창의와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창의적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데 있다고 하겠다. 사실 미래 창조부에서 갈등을 빚었던 ICT(정보통신기술)의 산업기술간 융합은 창조경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로컬(local) 개념은 물리적 거리의 개념에서 벗어나 심층구조 속으로 들어가 지역 창조경제와 맞닿는 범주로 발전해야 한다. 로컬 푸드가 파괴적인 세계 식량체계(global food system)에 대항하는 반작용을 배경으로 한다면 로컬경제는 보편적이고 추종적인 글로벌 지식과 기술에서 탈피하여 지방 고유의 창의성과 활력을 바탕으로 선도적인 창조력을 발휘하는 영역이다. 지식과 기술도 로컬과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어머니의 음식솜씨를 흉내 낸다 하더라도 제 맛이 나지 않듯이 제작자의 인격과 체화되어 도저히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암묵적 또는 인격적 지식, 비법(미스터리), 열정, 솜씨, 노하우 등 일상적인 삶의 과정 속에서 발휘되고 구체적 삶과 함께 숨 쉬는 지방지식(local knowledge)이 창조의 원천을 이룬다. 작년 말 동네토종 빵집을 살리자는 세미나에서 토마토와 부르콜리 같은 로컬 푸드에다 장인기술의 솜씨와 열정을 섞은 독특한 빵들이 거대한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이겨낸 사례를 들어 골목상권을 지키는 방안으로 논의했던 까닭도 여기에 연유한다.

아직 신정부의 창조경제는 전체적인 그림이 뚜렷하지 않다. 모든 정책 집행이 그렇듯이 위만 쳐다봐서는 안된다. 국정 목표의 상위개념과 방향성이 설정되었다면 지역과 현장에서 이를 거꾸로 구체화하여 정책집행의 타깃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엊그제 농수산부 제1차관이 서둘러 완주군의 로컬직매장을 방문했던 계기를 유통구조 개선의 모델에만 그치지 말고 지역의 창조경제와 연결할 수 있는 밑그림으로 접맥시켜 국정의 큰 물꼬를 유리하게 돌려야 한다. 때마침 전북의 농협지역본부도 전북도와 함께 신토불이(身土不二)의 흐름에 이어 협동조합, 로컬푸드, 직매장 사업 등을 통해 지역농업의 재편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순환경제의 패러다임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열정과 신뢰가 서로 피드백되는 과정 속에서 이뤄진다. 모처럼의 여러 계기들을 리좀 모델과 비빔밥의 엉킴처럼 빨간 고추장으로 서로 조화시켜 지역의 창조적인 로컬경제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원 용 찬 / 전북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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