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법관의 아름다운 뒷모습
어느 대법관의 아름다운 뒷모습
  • 신영규
  • 승인 2013.03.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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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능환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퇴임 후 일상이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대법관 출신인 그는 퇴임 다음날부터 서울 상도동에 있는 부인이 운영하는 8평 남짓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모습이 TV에 나왔다. 최고 상층부의 신분에서 이웃집 평범한 아저씨가 된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좁은 가게에서 손님이 오면 물건을 팔고 카운터에서 열심히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 일’이라고 했지만 전직 대법관의 편의점 재취업은 국민에겐 낯설고 신선한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1980년 전주지법 판사로 임용돼 이후 울산지법 법원장, 대법원 대법관에 이어 2011년 2월부터 선관위원장을 지냈다.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총리로 거론되자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를 총괄하는 공직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공개적으로 고사한 바 있다. 그가 작년 3월 신고한 재산은 9억5000만원이다. 집 한 채가 사실상 재산의 전부인 셈이다. 대법관 출신인 그가 다른 법조계 고위직 출신 인사들처럼 대형 로펌(법률 회사)에 들어갔다면 아마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분간 자유인으로 아내를 도우면서 서민으로서 경제생활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퇴임 다음날 점심을 부인과 함께 편의점에서 팔다 남은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도올 김용옥의 책 ‘중용, 인간의 맛‘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언론에서 자꾸 이상한 사람처럼 쓰는데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참다운 공직자의 모습’, ‘청백리의 상징’ 등 찬사가 줄을 잇는다. 한편으론 동기를 의심하는 내용의 트윗을 날리거나 삐딱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있다. 대법관까지 지낸 사람이 전문지식을 살려 공익에 봉사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 그에게 남의 말은 다 부질없다.

김 전 대법관은 2006년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동네에 책방 하나 내고 이웃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2011년 중앙선관위원장 청문회 때 의원들이 ‘동네 책방을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동네 책방들이 어려워졌다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법원 재직 시절 대법원 선임·수석 재판연구관을 거쳐 이론과 실무에 정통한 실력파 법관으로 유명했던 그는 소탈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녀 후배 판사들로부터 ‘법관의 사표(師表)’로 불렸다고 한다.

김능환 전 대법관은 청빈을 미덕으로 삼아 청빈검약을 실천하는 선비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 같지만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정직하게, 깨끗하게, 그리고 즐겁게 살자.’는 정신이다. 가난함에는 청빈(淸貧)과 탁빈(濁貧)이 있을 수 있듯이 부유함에도 청부(淸富)와 탁부(濁富)가 있을 수 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의 비유나, “옳지 못한 부귀는 뜬 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는 공자의 일침은 모두 올바르지 못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자들을 비난하는 표현이다. 물론 올바른 방법과 정당하게 모은 재산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올바르게 사용한 부자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배금주의와 서열화에 물들어 있다. 어느 직장이 더 많은 돈을 주는지, 어떤 자리가 더 높은 권세를 보장하는지 따지기에 바쁘다. 이런 세태에 김능환 전 대법관의 퇴임 뒷모습은 청량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사회일 것이다. 공정사회를 만드는 견인차로서 공직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공직사회가 공정한 사회를 위해 모범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공무원의 청렴수준이라 할 수 있는 국가청렴도 지수(CPI)는 2010년을 기준으로 10점 만점에 5.4점으로 1백78개국 가운데 39위를 기록했다. 선진국 기준이 7점대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청렴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벼슬이란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과 같다. 자리를 떠나면 보통 사람 옷으로 갈아입는 게 정상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김 전 대법관의 정상적인 행동을 특이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 화제를 삼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비정상 사회가 돼버렸다는 증거다. 김 전 대법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모든 고위 공직자들이 본받았으면 한다.

신영규(전북수필 주간 겸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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