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박물관도 발전할 수 있다
전북의 박물관도 발전할 수 있다
  • 유병하
  • 승인 2013.03.12 15: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사람의 생각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불가에서 화두로 삼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삼라만상’이 변화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물질뿐만 아니라 사람 생각도 변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변화할 줄 아는 사람이 있기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도 역시 큰 폭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명저로서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 데이비드 헬드 등의 《전지구적 변환》,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마뉴엘 카스텔의 《네트워크사회의 도래》만 읽어보아도 그 변화의 내용이나 속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의 박물관도 꾸준히 변화해 왔다. 현대사회의 중대한 변화에 직면할 때마다 ‘도전과 응전’을 통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박물관이 복잡한 현대문명 속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명을 이루는 하나의 주체로 기능을 하면서 변화를 주도해 나가거나 변화의 추세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민주화, 정보화, 세계화, 분권화 등-속에서 이용자(user) 중심, 특성화된 활동 지향, 온·오프라인 서비스 확대, 국제교류 증대, 분야별 협력체계 구축 등이 21세기의 박물관이 지향해야할 패러다임(paradigm)으로 제시된 바 있었다. 사실 현대의 박물관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위에서 부여받은 미션을 실행에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지향점을 알더라도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하는 것이냐?’라는 각론에서 많은 박물관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왜냐하면, 개별 박물관마다 새 시대의 요구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본적인 운영여건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사립박물관은 필수 운영자금인 인건비와 전기요금도 확보하기 어렵고, 대학박물관은 존립 근거인 대학주체나 학생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공립박물관은 학예 인력의 부족, 학예직과 행정직 사이 및 수익성과 공공성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운영의 어려움과 방향 설정의 혼란이 상존(常存)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박물관 발전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주변 환경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대는 네트워크사회(network society)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과 집단을 연결하는 새로운 상호 소통의 방식에 기반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정보처리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네트워크의 발전에 핵심적 기능을 담당하였음은 물론이다. 다양한 네트워크는 사회조직 및 문화영역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사회 전체를 재구조화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작동하고 있다. 현대의 박물관도 여기에 관심과 열정을 두어 운영여건을 개선하면서 새로운 지향점을 현실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박물관과 개인, 박물관과 박물관, 박물관과 지역사회의 환상(環狀) 네트워크 구축은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박물관 내부의 자원봉사자와 박물관회원(membership), 운영자문위원을 통해 박물관 운영자금과 아이디어 확보, 전문인력 보완, 행사 홍보를 할 수 있다. 이는 박물관 내부의 고유 시스템을 외부 사람에게 적극 개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성과이다. 그리고 박물관끼리 연결된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역시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역별, 기능별로 많은 박물관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 즉 영월군 박물관협의회, 전북박물관미술관협의회, 대학박물관협의회, 한국박물관협회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박물관은 여러 개의 협의체에 가입된 중층적 네트워크체제에 속해 있다. 전북도내의 박물관이 연결되어 있는 협의체만 살펴보더라도 공동전시 개최, 공동 포털사이트의 운영, 공동 교육프로그램의 운영, 유물정보의 상호교환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박물관이 기업과 문화예술기관, 교육기관, 기업, 행정기관, 해외 기관 등과도 환상(環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면, 그 성과는 보다 크게 기대할 수 있다. 전북 도내의 사립박물관이 전국의 기업과 후원협약을 개별로 맺는 1사1관 운동을 전개하기, 전북 도내 박물관 전체가 전북교육청과 연대하여 박물관이라는 보다 확장된 공간에서 청소년교육을 실행하기, 문화체육관광부 및 국립중앙박물관과 연대하여 맞춤형 컨설팅 실행하기, 각종 문화예술기관과 연대하여 박물관을 진정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기 등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외로 외연을 확대할 경우 국립박물관과 자치단체, 기업 등이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해외 협력체계와 연대하여 외국에서의 박물관 홍보나 국내를 찾는 관광객의 유치, 국제전시와 같은 운영노하우 습득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전북의 박물관도 스스로 도와야 할 때가 되었다. 현재도 부분적, 간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박물관 협력 네트워크 체제를 보다 공고하게, 보다 유기적으로 구축하여 전북도내의 박물관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본격적으로 마련해보기를 기대한다. 현재로서는 이것만이 지역민과 지역사회에 감동을 주고, 박물관 관련의 정책집단에도 긴장을 주어 보다 발전한 지원책을 이끌어내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유병하<국립전주박물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