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歸鄕)
귀향 (歸鄕)
  • 이흥재
  • 승인 2013.03.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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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의 귀(歸)는 돌아갈 귀, 돌아올 귀이다. 그래서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1980년대 예술운동 현장의 작가들’전은 남천 송수남에게는 <귀향전>인 셈이다. 남천의 입장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고, 고향에 있는 우리에게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도립미술관 전시는 남천이 고향에 돌아옴을 환영하는 의미도 있다.

1980년대는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의 시기 중 하나였다. 벌써 30년 즉 한 세대가 지난 만큼 오늘의 입장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앞으로의 미래의 좌표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1980년대는 신군부가 들어선 만큼 한국미술의 현장도 기존의 전통보수적인 미술과 미술이 시대의 변혁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민중미술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이다.

한국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수묵화운동을 통해 한국화를 새로운 경지로 이끈 남천은 전통 산수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바탕으로 현대적 조형성을 추구해 왔다. 그는 산수풍경과 채색 일변도의 한국화단을 수묵의 추상세계로 이끈 선구자이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현대미술의 산증인이다. 그동안 화가로, 홍익대교수로 그리고 우리 미술의 이론가로 열정적으로 살아온 남천은 중앙화단에서 활동하다 최근 고향인 전주 흑석골에 내려와 후학들에게 작가로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고향에 다시 돌아와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없지 않았겠지만, 남천은 과감하게 작업실을 짓고 평생의 작업을 옮겨왔다. 온몸을 던져 이 시대에 맞는 한국화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온 남천 송수남의 귀향은 단순히 한 원로작가가 고향에 돌아옴을 넘어 그가 평생 추구해온 근원으로의 회귀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흔히 남천 송수남은 한국 수묵화운동의 선구자라고 한다. 그럼 수묵화는 어떤 의미일까? 수묵에서 선을 긋고 바림 하는데 사용하는 먹물은 무채색이다. 무채색이란 ‘색깔이 없다. 색깔이 아니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무채색은 온갖 색이 바래져서 화려함을 잃은 마지막 모습이다. 그러나 또 ‘먹에는 온갖 색이 들어있다’는 말도 있다. 이것은 무채색이 모든 색의 소멸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모든 유채색이 이로부터 새로 시작되는 근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무채색인 수묵은 최고의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수묵화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가능케 한다. 수묵화는 회화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양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상을 낳기 때문이다.

남천은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과 시, 철학까지 섭렵하면서 한국인이란 무엇이며, 한국의 그림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등 자신을 향한 끝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는 시와 그림을 한데 모은 시화집 『세월의 강, 수묵의 뜨락에서』도 발표했다. 남천의 시 한편이다.

수묵을 치는 사람은

항시 마음을 비워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마음 비우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랴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은 비우기를 배우는 것이다.

남천의 ‘붓의 놀림’ 연작은 수묵 추상이다. 한국화에서 추상은 그것도 수묵만으로는 어떻게 보면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몬드리안의 주장처럼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은 이 세상의 본질과 근원에 이르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전주이후 신작에는 그 수묵 속에서 색동무늬를 만날 수 있다. 수묵의 전통처럼 색동의 오방색은 오랜 전통이다. 모두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함께 만나는 일은 아주 생소하다. 서서히 번져가는 한 번의 붓의 놀림은 오히려 불교의 선(禪)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기도 한다. 수없이 그은 수직과 수평의 남천의 수묵 그리고 색동무늬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남천 송수남의 귀향은 고향으로, 한국화로, 수묵으로 그리고 삶의 본질로 회귀하는 것이 아닐까?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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