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가 살아야 인류가 산다.
孔子가 살아야 인류가 산다.
  • 황병근
  • 승인 2013.03.0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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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께서는 2564년전 부친 숙량흘(叔梁紇)과 모친 안징재(顔徵在)와의 사이에서 노(魯)나라 산동성에서 탄생하셨다. 창고관리직과 가축사육사등 말단관직부터 시작하여 정공(定公)에게 발탁되어, 50대가 되어서야 농업장관(司空) 사법장관(大司寇)을 거쳐 55세때 재상에 올랐다. 제(齊)나라 제후였던 환공(桓公)의 자손인 맹손(孟孫), 계손(季孫), 숙손(叔孫)이 삼환씨(三桓氏)를 형성 전횡을 자행하며 국권을 농락하니, 공자는 군후(君侯)의 권력회복에 힘썼으나 실패하여, 14년동안을 제자들과 위, 조, 진, 송,나라등을 돌아다니며, 인의(仁義)와 왕도정치를 설교했으나 수용되지 않아, 69세에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교육과 학문연구에 전념 74세에 서거하셨다. 공자의 77대 직계후손인 쿵더청(孔德成)은 1937년 일본군이 산동성을 점령하자 장제스(蔣介石)는 사단병력을 보내 쿵씨 부부를 구출했으며 그후 항일투쟁을 하다가, 1949년 국민당 장제스 정권이 마오쩌둥(毛澤東)정권에게 쫒겨날때 대만으로 함께 건너왔다. 장제스 총통은 황금과 문화재와 더불어 27세의 쿵씨를 국가의 보물로 “옥새”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대성지성선사(大成至聖先師) 공자봉사관을 73년동안 역임하며, 교수와 고시원장등을 역임하며 대만이 중국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상징적 존재로 존경받았다. 2008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쿵씨는 슬하에 장남 웨이이(維益)등 2남2녀와 함께 장손자 추이창(垂長)과, 증손자 유런(佑仁)을 두고있어 78,79,80대 공자의 직손들이 이어지고 있다.

장제스 총통이 공자후손을 극진히 모시고 있는 사이에, 마오쩌둥 공산장권은 1974년 비공비림(批孔批林)의 슬로건으로 철부지 홍위병들을 앞세워 문화혁명이라는 미명하에 孔子의 유적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임바오(林彪)세력을 타도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이끌던 이념의 시대는 1978년 화궈펑(華國鋒)시대를 끝으로 작은거인 뎡사오핑(登小平)시대로 바뀌면서 개혁개방의 시대가 열리게 되였다. 그동안 중국이 孔子를 팽개치고 유적들을 파괴하고 있을때 공자사상을 현창하고 보존하던곳은 바로 한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자의 유적지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고있다. 공자가 태어난 중국의 곡부(曲阜)는 공자를 모신 사당 공묘(孔廟)와 공자의 후손 76대손 까지의 묘가 있는 공림(孔林)등의 중심유적지가 수백만 인파의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전하고 있을뿐 아니라 공자사상을 재현하는 문화공간 교육공관이 들어서 있다. 공자사상의 핵인 인의(仁義)가 21C에는 모든 문화의 중심이라는 멧세지를 관광객에게 전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유교에대한 논평을 빌리자면 프랑스 계몽사상가인 볼테르(1694~1778)는 공자는 전생과 후생을 미혹 시키지않고 현실 삶의 도리만을 가르쳤음을 훌륭하게 여기여 초상화에 찬문까지 써서 조석으로 경배했다고 했으며, 영국의 역사 정치학자인 토인비(1889~1975)는 동양정신문화의 원류인 한국의 가족제도가 보존되어야 세계인이 구원을 받게 될것이라고 연설한바있고, 미국의 경제학자인 로스토(1916~?)교수는 한국은 인(仁)과 예(禮)가 있어 이것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하게되면 세계적인 리더가 될것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미래학자인 허먼칸(1922~1983)은 70년대 초에 미래의 체험이라는 저서를 통해 21C에는 서구적 자본주의는 몰락하고 유교적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 할 것이라고 예언한바 있다. 유교적 자본주의가 전 세계가 지향해야할 신 경제의 좌표라고 하면서 그 이유로 교육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방식 가족향토를 중시하는 대가족 개념, 신뢰와 예의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사회 윤리를 중시하는 집단적 국가의식 저축습관 그리고 강한 유교적 문화의 동질감을 손꼽고있다. 이렇듯 중국은 지금 국민통합과, 새로운 사회문화의 주도력은 물론 전인류의 정신적 가치세계와 세계문화의 종주국이 된다는 논리를 공자사상에서 찾고있을뿐 아니라, 세계적인 사상가들은 공자의 유교 사상만이 21C를 이끌어갈 이념적 최고의 가치로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이후 고구려의 태학(太學), 백제의 박사(博士), 통일신라의 국학(國學), 고려의 국자감(國資鑑)에 이어 조선조는 성균관(成均館)을 중심으로 충효는 물론 예의염치(禮義廉恥:예절과 의리, 청렴과 부끄러움)를 사유(四維:국가통치의 네가지 원칙)로 했으며, 한국은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2천여년을 이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정신문화는 과연 어떠한가? 무분별한 서구의 물질문명에 사로잡혀 도의(道義)의 실종과 인간성의 상실로 인해, 부자 형제간에도 사소한 이해관계로 천륜을 도륙내는 참혹한 패륜과, 예의염치는 찾아볼수 없는 이기주의에 매몰된 정치 치한들만이 득실거리는 탐욕스런 현실에서 설혹 경제지수가 아무리 높아진다 한들, 인간의 행복지수는 뿌리채 망가질수 밖에 없다. 서구적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디쳐 이제 동양의 공자사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 유교적 자본주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21c 패러다임을 세계는 앞다투어 따라가고 있는데, 유교문화의 종주국이라 할수있는 한국은 정작 구시대적 진부한 문화로 폄하하며 도리혀 금수 공화국으로 추락하고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망령이 사라지고 위정자들의 예의염치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자신과 가정부터 가지런히 닦고 정치에 임하라)의도덕적 철학이 기본적으로 자리잡지 않는한, 우리의 미래는 기대할수 없다. 조상대대로 이어온 우리의 소중한 전통 유교문화를 회복하여 도의가 살아 숨쉬는 이인위본(以人爲本) 사람이 중심이되는 맑은 세상을 만드는것 만이 미래를 담보할수 있는 동력이 될것이다. 신의와 도의정치의 마지막 보루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혜안을 기대해본다.

< 성균관유도회 전라북도본부 회장 황 병 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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