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제비꽃’을 들으며
노래 ‘제비꽃’을 들으며
  • 문창룡
  • 승인 2013.03.05 1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 군대를 다녀 와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3학년 남자, 소설을 쓰는 대학 3학년 여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여자 아이다. 모두 개성도 다르고 삶의 지향점도 다르다. 하지만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음식과 같은 훈육을 받아서인지 바탕에 흐르는 정서에는 비슷한 느낌이 많다. 

우리는 가끔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에 서로를 우려하고 격려하는 말을 자주한다. 이럴 때는 서로가 겸연쩍어하기도 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요즘은 취업을 준비하는 아들의 고민이 많아졌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 많은 생각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녹녹치 않은 현실이 별별 번민을 만들어가고 있는듯해서 아버지이기 이전에 어른으로써 미안한 생각이 든다.

또 가끔은 여동생에 대해 걱정하는 말을 한다. 대학에 다니는 여동생의 회식문화와 용돈의 씀씀이까지 오빠의 입장에서 그것들에 대해 평가하고 개선할 대안을 내 놓는다. 그러면 동생은 인정하는 점이 있긴 하나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노라고 항변한다. 막내 여동생에도 몇 가지 요구사항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럴 때면 어린 여동생이 왜? 부모님께도 듣지 않는 간섭을 오빠에게 들어야 하느냐고 역정을 내기 일쑤다.

아침에 있던 일이다. 아침 식사 시간에 오빠의 말문이 열리며 대학 3학년 딸아이에게는 불편한 자리가 되었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 모임을 갖고 돌아 온 여동생이 마냥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끼어들어야만 했다. “밤늦게까지 사람들과 함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배우고 온 동생에게 왜 그래? 희노애락을 제대로 알아야만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거란다.” “아빠는 딸들에게 너무 허용적인 것 같아요. 전 제 딸은 좀 엄격하게 키울 거예요.” “넌 그렇게 하렴. 난 내 딸들을 믿는단다.”

그리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아들 녀석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딸들을 관대하게 대하나? 그래서 무슨 문제가 생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관대한건만은 아니었던 생각도 났다. 서로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부드러운 조율을 통해 존경받고 신뢰하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이 생겼을 때는 직설적이지 않고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 아들 녀석의 눈에 관대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예를 들어 예쁜 신발을 딸에게 사주면서 “이 신발 신고 좋은 곳에 많이 다녀. 아빠가 걱정하는 곳에는 조금만 가.”라고 하는 식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내 방법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딸아이가 아주 작은 일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한밤중에도 깨어 있어 자신의 삶을 고민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관습에 메이지 않고 자유로운 세상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길 원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딸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마침 라디오에서 가수 조동진의 ‘제비꽃’이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내가 처음 널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에 제비꽃. 너는 웃으며 네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음~♪” 그렇다. 소녀는 누구의 딸이기도 하지만 그녀 자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