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33>말짱 도루묵
가루지기 <533>말짱 도루묵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27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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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11>

이생원이 절망에 빠져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수록 옹녀 년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사내들한테 아랫도리 물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죽하면 새벽에 그 놈이 고개를 들지 않은 놈한테는 장리쌀을 놓지 말라는 말까지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개기름 번드레한 얼굴로 당당하게 들어서던 이생원의 풀이 팍 죽은 모습이 웃음기만 한 것이었다. 어쩌면 사내의 고개 숙인 물건을 가지고 흥정을 벌일수도 있을 것이었다.

“걱정허지 마시씨요. 이년이 서방이 죽고 삼년을 수절허다가 주막을 떠돈지 두 해가 다 돼가요만, 이년의 손길을 타고도 안 살아나는 놈언 보 덜 못했소. 이년의 손으로 몇 번 예쁘다고 씨다듬어주면 뽀시시 살아날 것이요.”

“틀렸니라. 그 놈 고집은 아무도 못 말리니라. 니가 만약 그놈을 오늘내로 다시 세우기만허면 술값을 두 배로 주겠다.”

이생원의 말에 옹녀 년이 참말이요?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사내가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느냐?”

“정 그러시다면 주모 아짐씨 앞에서 다짐을 허실 수도 있소?”

“무슨 다짐을 헌다는 말이더냐?”

이생원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생원 나리의 요놈을 살려가꼬 이년의 밭꺼정 갈면 술값이며 꽃값을 두 배로 주시겄다는 약조 말씸이요.”

“내가 간절히 바라는 바니라. 어떻게든 이놈을 세울수만 있으면 세워보거라. 두 배가 아니라, 세밴들 못 주겠느냐? 이놈이 석달 열흘만에 겨우 고개를 들었었다고 했잖느냐?”

이생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평소 놈의 행태로 보아 수일내로 고개를 들기는 애당초 글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좋구만요. 주모 아짐씨를 불러 약조를 허십시다. 방금 말씸허신대로 술값이며 꽃값을 두 배로 주시겄다는 약조를 허십시다. 이년이 주모 아짐씨를 부르요이.”

옹녀 년이 그리 말하며 문을 벌컥 여는데, 주모가 문 밖에 서 있다가 무슨 일이여? 하고 물었다.

이생원이 말했다.

“말짱 도루묵이 됐구만. 밭을 갈 수가 없게 되었어.“

“이년의 불찰이구만요. 생원나리의 처지를 잘 암서도 미처 옹녀헌테 말얼 못했구만요. 오널언 술값 밥값 걱정허시지 말고 실컷 드시고 가시씨요.”

주모의 말에 이생원이 아닐쎄, 아니구만, 하고 손을 내저었다.

“그것이 아니라, 옹녀 이 년이 요상헌 소리를 허는구만. 어뜨케던 이놈을 살려가지고 일을 치루게 한다는데, 그렇게만 해주면 내가 술값이며 꽃값을 평소의 세 배를 주겠네. 만약 옹녀 야가 아니라 자네가 대신해도 마찬가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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