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29>하룻밤 새울 꽃과 나비
가루지기 <529>하룻밤 새울 꽃과 나비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26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 옹녀의 전성시대 <7>

“이년의 팔촌 동생뻘이구만요. 마침 놀러와까고 간다는 것얼 잘 붙잡아 놨구만요.”

주모가 옹녀 년을 향해 눈을 깜박거렸다. 내가 그리 말했으니, 너도 그리 행세하라는 뜻이었지만, 주막깨나 찾아다니고, 계집들의 속곳깨나 내려보았을 이생원이 그걸 모를리가 없었다.

“빌어먹을 년, 수작을 부리기는. 네가 그런다고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인월 삼거리 주막에 새계집이 왔다는 소문을 내가 들은 바가 없으니, 며칠 안 되었겟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옹녀라 합니다.”

“옹녀? 거 이름 한번 요상시럽구나. 어쩐지 음기가 풍겨.”

“이년은 아직꺼정 이름가꼬 그리 말씸허는 손님언 만낸 일이 없구만요.”

“이름이야 아무런들 어쩌냐? 주모, 오늘은 내가 옹녀하고 술을 마실 터이니, 자네는 시중이나 잘 들게.”

이생원이 입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 말하자 주모가 토라진 시늉을 했다.

“섭섭합니다, 나리. 이년은 생원 나리 오시기를 학수고대했는데, 석달 열흘만에 오셔가꼬, 새계집을 탐허십니까? 아무리 지는 꽃일망정 서럽습니다.”

“그것이 사내인 걸 어쩌겠느냐? 기왕에 돈 주고 마시는 술, 젊고 싱싱한 계집을 탐허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더냐? 너무 섭섭타 말그라.”

“알겠구만요. 하찮은 주막계집이 섭섭타 한들 한번 옮겨 앉은 나비가 돌아오겠습니까? 지는 꽃만 더욱 섧지요.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걸게 한 상 장만하여 올리겠습니다.”

“술값걱정은 말고 기름진 안주로 올리거라.”

“예, 하믄입쇼.”

주모가 입가에 보일듯 말듯 웃음을 남기며 방을 나갔다. 이생원이 옹녀 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디서 왔느냐? 설마 인월에 눌러 앉으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

“꽃은 나비한테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향기가 좋아 내려앉으면 말없이 하룻밤 재워줄 뿐,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습지요.”

“허허, 그 년 참.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가 제법 많은 모냥이로구나. 헌데, 네가 꽃이냐? 내가 꽃이냐? 아니면 네가 나비냐” 내가 나비냐?“

이생원이 옹녀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런 걸 구태여 따져서 어따 쓸라요? 나리가 나비고, 이년이 꽃이면 으떻고, 이년이 나비고 나리가 꽃이면 또 으떻다요? 어차피 꽃과 나비는 하룻밤을 새울 것인데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