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번과 기생으로 본 식민지 근대성­일제강점기 전북를 중심으로
권번과 기생으로 본 식민지 근대성­일제강점기 전북를 중심으로
  • 김미진기자
  • 승인 2013.02.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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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술 활동을 통해 단절 위기에 처한 전통예술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 권번(券番)과 기생(妓生). 누군가는 방탕함과 문란함을 조장한 문화였다고 폄하하곤 하지만, 가야금을 다루는 황미연(한별고 교사)씨에게 만은 그들의 삶이 다르게 다가왔다.

조부인 서예가 故 석전 황욱 선생과 전북국악협회장을 지낸 아버지(황병근 성균관유도회 전북본부장)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가깝게 접했던 저자. 일찌감치 가야금 연주자로 발을 들이고, 국악이론과 전통음악을 연구해야하는 사명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운명은 어쩌면 가무악의 폭넓은 레퍼토리와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으로 전통예술을 주도해 나갔던 권번 기생의 운명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지난 2010년 발표한 박사학위논문을 재구성해 최근 ‘권번과 기생으로 본 식민지 근대성-일제강점기 전라북도를 중심으로(민속원·2만6,000원)’를 출간했다. 이 책은 전통예술이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문화로 거듭나는데 일조한 기생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권번이 일제강점기 전통예술사를 고찰함에 있어 중요한 연구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부족했던 만큼 이번 책의 출간은 의미가 깊다.

기생은 조선 후기까지 국가와 관아에 소속돼 기예를 펼쳤다. 낮은 신분임에도 궁중에까지 나가 예술을 열어 나간 것.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말까지 가무를 관장하던 기관은 교방(敎坊)인데, 전북도에 존재했던 교방은 전주, 무주, 순창이었고, ‘호남읍지’에 교방 설치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남원지역에도 기생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교방기생의 운명이 바뀌게 된 계기는 관기(官妓) 제도의 붕괴로 이들이 면천된 이후. 이에 따라 기생들의 활동도 다채롭게 변모해 나갔다. 경성에서는 1909년 이후 기생조합이 등장해 기예의 대중화와 상품화를 몰고 온다.

이어 1915년경부터는 기생조합이 권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전북지역에서 권번으로 이어지 지역은 전주와 남원이었고, 무주와 순창은 권번으로 전승되지 못했다. 반면, 군산과 정읍, 이리, 부안 등에 조합과 권번이 각각 설립됐다.

이처럼 기생조합과 권번이 양성화됨에 따라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공연과 교육이 기획될 수 있었다. 사회는 여전히 기생들을 냉대했지만, 권번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기생들은 새로운 대중예술인으로 전통예악을 지키는 역할을 해냈고,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위기에 처한 전통예술을 전승하는 주체로서 삶을 이어나간 것이다.

그 시기 전라북도 권번과 기생들 역시 식민지적 근대가 요구한 일방적인 문명사회의 강요에서 벗어나 탐욕의 생존전략이 아닌 스스로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과 활동을 펼쳤다. 역사적, 사회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올곧게 예술가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주체적인 활동을 보여줬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동시대 대부분의 공교육기관이 서양문화와 일본문화를 교육한 것과 달리 사교육기관이었던 권번은 전통문화에 대한 교과목과 체계적이고 철저한 교육과정을 가졌다”면서 “이 시기 기생들이 스스로의 선택과 자유의지의 발현으로 공연활동을 펼치면서 사멸위기에 처한 전통음악을 전승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제까지 기생에 대한 저급한 인식 때문에 권번과 기생의 역할과 그 위상에 대해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본 연구가 일제강점기의 권번과 기생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부분적이나마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전주대 사회교육과와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한 황씨는 한양대 대학원에서 석사, 전북대 대학원 고고인류학과 박사를 받았다. 저서로 ‘신관용 가야금산조 연구’, ‘전북국악사’, ‘우리의 소리, 세계의 소리 판소리’, ‘정읍국악사’ 등이 있다.

김미진기자 mjy308@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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